나를 향한 주님의 소원
찬 송 : 539장 -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성 경 : 마가복음 10장 35~45절
"더 낮아지라, 더 섬기라"고 당부하신 주님의 소원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무지하고 미련하여 혹시라도 잘못된 소원으로 주님에게 나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집중하기 원합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낮아짐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진교 목사 ㅣ 마산 중앙교회
(막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막 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3)세례를 받으려니와
(막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막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마20:24
(막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막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절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막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막 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3)세례를 받으려니와
(막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막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마20:24
(막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막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막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절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나 주님 앞에 크고 작은 소원이 있습니다. 복음서에도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와서 해결 받기를 원하는 모습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픈 사람, 장애인, 귀신 들린 사람, 버림 받은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의 소원은 단순합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합니다.", 문둥병자들은 "낫기를 원합니다.", 귀신들린 자녀를 데려온 아버지는 "할 수만 있다면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고 말합니다.
갈급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우리의 인생 문제에 개입하여 그 소원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소원은 이전의 내용과 사뭇 달라졌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 형제는 선생이신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보장해 달라는 '청탁'을 하기에 이릅니다.
청탁의 내용을 추론하면 '지금까지 예수님의 능력으로 보아 이제 곧 높은 지위에 이르실 것이 분명하니 우리가 먼저 최측근의 자리를 선점하자!'는 마음입니다. 세속의 욕심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바라고 기대한 것은 '자리'였습니다. 그것도 세상의 높은 자리! 세속의 권력을 예수님 앞에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접근하는 방법이 모두 세속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껏 보여주신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방법인데, 여전히 세속에 물들어 있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청탁을 하게 된 이유는 예수님이 언급하신 수난 예고를 철저히 무시한 영적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자신들이 먼저 명예와 권력의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세상적인 경쟁심과 조바심까지 더해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청탁하는 우배한 제자들에게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누리는 자가 아니라 베푸는 자, 높은 위치의 권력자가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위해 자신까지도 대속물로 내어줄 수 있는 종이 될 것을 소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나를 향한 주님의 소원에 얼마나 관심하고 있습니까?
이들의 소원은 단순합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합니다.", 문둥병자들은 "낫기를 원합니다.", 귀신들린 자녀를 데려온 아버지는 "할 수만 있다면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고 말합니다.
갈급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우리의 인생 문제에 개입하여 그 소원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소원은 이전의 내용과 사뭇 달라졌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 형제는 선생이신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보장해 달라는 '청탁'을 하기에 이릅니다.
청탁의 내용을 추론하면 '지금까지 예수님의 능력으로 보아 이제 곧 높은 지위에 이르실 것이 분명하니 우리가 먼저 최측근의 자리를 선점하자!'는 마음입니다. 세속의 욕심에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바라고 기대한 것은 '자리'였습니다. 그것도 세상의 높은 자리! 세속의 권력을 예수님 앞에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접근하는 방법이 모두 세속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껏 보여주신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방법인데, 여전히 세속에 물들어 있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청탁을 하게 된 이유는 예수님이 언급하신 수난 예고를 철저히 무시한 영적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자신들이 먼저 명예와 권력의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세상적인 경쟁심과 조바심까지 더해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청탁하는 우배한 제자들에게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누리는 자가 아니라 베푸는 자, 높은 위치의 권력자가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위해 자신까지도 대속물로 내어줄 수 있는 종이 될 것을 소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나를 향한 주님의 소원에 얼마나 관심하고 있습니까?
"더 낮아지라, 더 섬기라"고 당부하신 주님의 소원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무지하고 미련하여 혹시라도 잘못된 소원으로 주님에게 나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집중하기 원합니다. 더 많이 섬기고, 더 낮아짐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진교 목사 ㅣ 마산 중앙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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