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눈높이를 맞추시는 하나님

w.j.lee 2017. 3. 23. 07:37

눈높이를 맞추시는 하나님

찬  송 : 93장 - 예수는 나의 힘이요




성  경 : 히브리서 2:5~18
(히 2: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히 2: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히 2: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 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 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 2: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요  절 :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인간은 타인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인생 경험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다리나 허리 등을 심하게 다쳐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마음을 모를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어떻게 그 마음을 다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파편적인 이해요, 이해하고자노력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아십니다. 우리가 어떤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환히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주 만물을 통해 자신이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성육신의 사건, 이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명백히 보녀주는 증거입니다. 십자가 사건 역시 하나니므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이간의 생사화복을 함께 겪으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도우시는 것도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이해 정도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인간도 자신의 경험치 만큼 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험한 뒤에 자신의 이해 범위와 깊이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먼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동일한 아품을 겪은 사람이 건네는 한 마디의 말, 눈빛 하나는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살면서 겪은 경험들이 위로하는 행동에 권위를 부여하고, 권면의 말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내가 겪은 아품과 고통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때 비로서 참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나의 속내를 털어놓아야 합니다. 가장 깊숙히 가라앉은 것들까지 드러내고 아뢸 때 하나님게서 그것을 만져 주실 것이고, 그 때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세밀하여 우리 삶에 안성 유기처럼 맞춤이 됩니다. 그러한 도움을 간구하고 받을수록, 두 톱니바퀴의 어우러짐과 같이 멋진 삶을 꾸리게 될 것입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기까지 우리를 이해하고자 하셨던 하나님, 우리에게도 그러한 사랑과 공감의 마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어려움에 처해 고통스럽고, 삶을 포기하고 싶어 주저앉은 자들을 향해 이해와 배려의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석주 목사 ㅣ 영광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