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찬 송 : 363장 - 내가 깊은 곳에서
성 경 : 누가복음 22:24~30
불타는 시기심과 강렬한 욕심을 다스리는 방법, 예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우리는 섬기는 자리를 싫어하고 늘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기는 자로 살며 그 기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진국 목사 ㅣ 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눅 22: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눅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눅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요 절 :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눅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 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눅 22: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눅 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요 절 :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처럼 서로 다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서열 다툼입니다.
그 다툼을 해결하는 좋은 방식을 동물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입과 이빨을 가진 하마는 서로 싸웠을 때 둘 다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 피의 대결을 생략하고 승패를 판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을 크게 벌려 입의 크기를 재는 것입니다. 자기 입이 작다고 판단되면 시원하게 물러납니다. 동물들이 가진 지혜입니다.
사람들도 서로 다툼니다. 다투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더 크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 방식은 동물보다 더 지혜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난지라."(24) 그들도 우리와 같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권력욕과 다툼의 문제에 대한 답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섬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를 낮추는 일은 '누가 크냐'의 문제에서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높여 주시는 분이 누구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스스로 높아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높여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여주십니까? 자신을 낮추는 자, 즉 섬기는 자를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대중의 사랑을 비슷하게 받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잇습니다. '스타'와 '위인'입니다.
스타와 위인의 차이를 간단하게 말하면 스타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느냐'이고, 위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가슴에 품느냐'하는 것입니다.
둘은 지향하는 바가 다릅니다. '높이를 지향하느냐, 깊이를 지향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자꾸 높이 올라가려 합니다 그러나 위인은 대중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눈높이와 몸의 자세를 낮춥니다.
신앙의 방식에 가까운 것은 역시 후자입니다. 신앙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하나님은 섬기려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셨고,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세계에 깊이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깊이에 도달할 때 비로서 진리에 눈을 뜰 것이며, 섬기는 자가 돼라 하신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툼을 해결하는 좋은 방식을 동물들은 알고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입과 이빨을 가진 하마는 서로 싸웠을 때 둘 다 치명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 피의 대결을 생략하고 승패를 판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을 크게 벌려 입의 크기를 재는 것입니다. 자기 입이 작다고 판단되면 시원하게 물러납니다. 동물들이 가진 지혜입니다.
사람들도 서로 다툼니다. 다투는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더 크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 방식은 동물보다 더 지혜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하는 다툼이 난지라."(24) 그들도 우리와 같이 부끄러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권력욕과 다툼의 문제에 대한 답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섬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를 낮추는 일은 '누가 크냐'의 문제에서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높여 주시는 분이 누구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스스로 높아지는 줄 압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높여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여주십니까? 자신을 낮추는 자, 즉 섬기는 자를 높여주십니다. 이것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대중의 사랑을 비슷하게 받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잇습니다. '스타'와 '위인'입니다.
스타와 위인의 차이를 간단하게 말하면 스타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느냐'이고, 위인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가슴에 품느냐'하는 것입니다.
둘은 지향하는 바가 다릅니다. '높이를 지향하느냐, 깊이를 지향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는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자꾸 높이 올라가려 합니다 그러나 위인은 대중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눈높이와 몸의 자세를 낮춥니다.
신앙의 방식에 가까운 것은 역시 후자입니다. 신앙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하나님은 섬기려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셨고,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세계에 깊이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깊이에 도달할 때 비로서 진리에 눈을 뜰 것이며, 섬기는 자가 돼라 하신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불타는 시기심과 강렬한 욕심을 다스리는 방법, 예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우리는 섬기는 자리를 싫어하고 늘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기는 자로 살며 그 기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진국 목사 ㅣ 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신앙의 길 > 가정예배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에 응답 하시는 하나님 (0) | 2017.05.11 |
---|---|
감사를 잘 가르치자 (0) | 2017.05.09 |
자기를 만나게 하는 돌봄 (0) | 2017.05.07 |
어린아이, 예수님, 그리고 나 (0) | 2017.05.06 |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0) | 2017.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