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06. 월요일
낙심(落心)의 상황에도 낙심(樂心)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찬 송:
300장 - 내 맘이 낙심되며
성 경:
고린도후서 4:1~6
(고후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1)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후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요 절 :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1)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후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요 절 :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영국제국과 남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벌어진 보어전쟁(1899~1902)이 한창일 때, 한 보어족 병사가 매우 드문 죄명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의 죄명은 '낙심죄'였습니다.
남아프리카 어느 작은 마을이 영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는 방어중인 병사들의 대열을 돌아다니며 온갖 부정적인 정보와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적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영국군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전과를 올렸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 마을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떠들며 다녔습니다.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그의 말은 총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진 무기였습니다. 즉 낙심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복음이 가려 있다고 했습니다(3).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훼방하는 것은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영관스런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4).
여기서 세상의 신은 사탄을 가르킵니다. 사탄은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이념, 종교, 문화 등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파하면서 믿음대로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마음을 혼미케 하고 낙심하게 하는 일에 열성입니다.
바울이라고 낙심의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만 '낙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세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만큼 낙심할 상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낙심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내하게 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하였습니까?
바울의 인내와 소망의 기쁨은 영원한 영광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만, 신앙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기간은 매우 짧기에 이곳에서 받는 고난 역시 찰나입니다.
반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나라를 바라보며 낙심(落心)의 상황에서도 기쁨(樂心)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낙심케 하는 일은 주로 무엇입니까?
그 상황에서 주로 어떠한 태도를 취합니까?
하나님, 낙심에 빠져 하나님을 위면했던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주사 보이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 너머의 영원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진정 소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승열 목사 ㅣ 주사랑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남아프리카 어느 작은 마을이 영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그는 방어중인 병사들의 대열을 돌아다니며 온갖 부정적인 정보와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적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영국군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전과를 올렸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 마을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떠들며 다녔습니다.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그의 말은 총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진 무기였습니다. 즉 낙심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복음이 가려 있다고 했습니다(3).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훼방하는 것은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영관스런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4).
여기서 세상의 신은 사탄을 가르킵니다. 사탄은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이념, 종교, 문화 등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파하면서 믿음대로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마음을 혼미케 하고 낙심하게 하는 일에 열성입니다.
바울이라고 낙심의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만 '낙심하지 않는다'는 고백이 세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만큼 낙심할 상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낙심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내하게 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하였습니까?
바울의 인내와 소망의 기쁨은 영원한 영광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영원한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만, 신앙인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기간은 매우 짧기에 이곳에서 받는 고난 역시 찰나입니다.
반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나라를 바라보며 낙심(落心)의 상황에서도 기쁨(樂心)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낙심케 하는 일은 주로 무엇입니까?
그 상황에서 주로 어떠한 태도를 취합니까?
하나님, 낙심에 빠져 하나님을 위면했던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주사 보이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 너머의 영원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진정 소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승열 목사 ㅣ 주사랑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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