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 토요일
실락(失樂)에서 복락(福樂)으로
찬 송:
466장 -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
성 경:
창세기 3:5~7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요 절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요 절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 받는 존 밀턴(John Milton)은 영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혁명가입니다.
그는 1667년에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서사시를 씁니다.
'실락원'의 주제는 사탄의 유혹에 패배한 아담과 이브의 낙원 상실입니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이 '실락원'을 읽고 너무 우울한 나머지, 밀턴에게 인간의 희망과 인류의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을하게 됩니다.
청년의 이 말이 촉매제(觸媒劑)가 되어, 밀턴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671년에 인간의 타락과 추방으로 인한 슬픈 이야기와는 정 반대적인 소망적이고 희망적인 한 편을 발표합니다.
그게 '복락원'(Paradise Regainde)입니다. 복락원은 제2의 아담인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인류에게 상실한 낙원을 다시 찾아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수백 년간 출현한 많은 교리적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우리는인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원죄 교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부산물(副産物)도 생산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실락(失樂)이 단단한 교리로 고정된 것입니다.
'원죄'교리의 고정화는 그리스도인의 현재적 삶을 위축시키고 하나님의 자애로움을 감춰지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하와와 그들의 실락'에 관한 이야기를 십자가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사건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실락'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회복된 복락'의 사건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 비춰 보는 현재적인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현대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원죄'가 '소외'의 뜻을 가르킨다고 말합니다.
소외란 무엇입니까? 본성,즉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유한한 존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본성적으로 분리되고 그의 편만(遍滿)한 은혜로부터 소외 되었다는 원죄 의식이 그리스도와의 친밀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다시 복락원(복락원)에 살게 된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함께 '실락원'에 살고 있나요? 아니면 그리스도와 함께 '복락원'에 살고 있나요?
하나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우리 가운데 독수리처럼 날개 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드높고 푸른 하늘이
우리의 거처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물기를 올려
하나님의 아름다운 화단으로 가꾸는
존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태수 목사 ㅣ 성암교회
그는 1667년에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서사시를 씁니다.
'실락원'의 주제는 사탄의 유혹에 패배한 아담과 이브의 낙원 상실입니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이 '실락원'을 읽고 너무 우울한 나머지, 밀턴에게 인간의 희망과 인류의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을하게 됩니다.
청년의 이 말이 촉매제(觸媒劑)가 되어, 밀턴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671년에 인간의 타락과 추방으로 인한 슬픈 이야기와는 정 반대적인 소망적이고 희망적인 한 편을 발표합니다.
그게 '복락원'(Paradise Regainde)입니다. 복락원은 제2의 아담인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인류에게 상실한 낙원을 다시 찾아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과거 수백 년간 출현한 많은 교리적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우리는인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원죄 교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부산물(副産物)도 생산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실락(失樂)이 단단한 교리로 고정된 것입니다.
'원죄'교리의 고정화는 그리스도인의 현재적 삶을 위축시키고 하나님의 자애로움을 감춰지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하와와 그들의 실락'에 관한 이야기를 십자가에서 승리한 그리스도의 사건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실락'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회복된 복락'의 사건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를 통해 비춰 보는 현재적인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현대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원죄'가 '소외'의 뜻을 가르킨다고 말합니다.
소외란 무엇입니까? 본성,즉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유한한 존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본성적으로 분리되고 그의 편만(遍滿)한 은혜로부터 소외 되었다는 원죄 의식이 그리스도와의 친밀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다시 복락원(복락원)에 살게 된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함께 '실락원'에 살고 있나요? 아니면 그리스도와 함께 '복락원'에 살고 있나요?
하나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우리 가운데 독수리처럼 날개 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드높고 푸른 하늘이
우리의 거처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물기를 올려
하나님의 아름다운 화단으로 가꾸는
존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태수 목사 ㅣ 성암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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