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4. 주일
믿음의 최고봉, 순교
찬 송:
336장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 경:
고린도전서 15:31~34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요 절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요 절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김영학 선교사를아십니까?
그는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이며 애국지사입니다.
하지만 김영학을 순교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국지사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김영학은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77년에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분입니다.
하지만 그를 배출한 감리교회는 최근까지 그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1915년 목사가 된 기영학은 1919년 양양 만세운동과 지속적인 애국 신앙운동을 전개하다가 2년간 옥고를 치렀습ㅂ니다.
그 후 그는 러시아 이주 한인들을 위한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합니다. 블라디보스톡 구역 관활 선교사로 파송받은 김영학은 소련 공산정권과 맞서며 한인 성도들을 보호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성도들을 지키던 그는 1930년 체포되어 10년 중노동형을 언도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1933년 복역 현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순교는 84년 동안 철저히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순교자 김영학 목사 기념 사업회'가 꾸려졌고, 2015년에는 그의 순교를 조명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영학 목사의 순교적 믿음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감리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순교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구약의 문서 예언자들에게서 순교자의 믿음과 아주 유사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전 750년에서 500년 사이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이 그들입니다.
하나님은 문서 예언자들에게 그 이전의 엘리야나 엘리사에게 주셨던 큰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겐 오직 말씀의 능력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에게 말씀은 하찮은 것이었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무력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문서예언자들은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에 생애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과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믿음의 최고봉인 순교는 하루아침의 결단을 통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일 말씀의 능력을 붙잡고, 매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을 때 이루어집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믿음이 우리를 믿음의 최고봉으로 안내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붙잡음으로 매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맡기고 있습니까?
하나님,
날마다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의 힘겨움과 고통이
믿음의 길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
그 자리에게까지 나아가게 하 주옵소서.
나를 포기하고 말씀 앞에 내가 죽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광섭 목사 ㅣ 전능교회
그는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이며 애국지사입니다.
하지만 김영학을 순교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국지사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김영학은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77년에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분입니다.
하지만 그를 배출한 감리교회는 최근까지 그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1915년 목사가 된 기영학은 1919년 양양 만세운동과 지속적인 애국 신앙운동을 전개하다가 2년간 옥고를 치렀습ㅂ니다.
그 후 그는 러시아 이주 한인들을 위한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합니다. 블라디보스톡 구역 관활 선교사로 파송받은 김영학은 소련 공산정권과 맞서며 한인 성도들을 보호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성도들을 지키던 그는 1930년 체포되어 10년 중노동형을 언도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1933년 복역 현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순교는 84년 동안 철저히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순교자 김영학 목사 기념 사업회'가 꾸려졌고, 2015년에는 그의 순교를 조명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김영학 목사의 순교적 믿음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감리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순교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구약의 문서 예언자들에게서 순교자의 믿음과 아주 유사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전 750년에서 500년 사이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이 그들입니다.
하나님은 문서 예언자들에게 그 이전의 엘리야나 엘리사에게 주셨던 큰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겐 오직 말씀의 능력만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에게 말씀은 하찮은 것이었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무력함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문서예언자들은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에 생애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과 고난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믿음의 최고봉인 순교는 하루아침의 결단을 통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일 말씀의 능력을 붙잡고, 매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을 때 이루어집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믿음이 우리를 믿음의 최고봉으로 안내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붙잡음으로 매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맡기고 있습니까?
하나님,
날마다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의 힘겨움과 고통이
믿음의 길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
그 자리에게까지 나아가게 하 주옵소서.
나를 포기하고 말씀 앞에 내가 죽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광섭 목사 ㅣ 전능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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