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8. 목요일
생명보다 앞선 것은 없습니다
찬 송:
389장 - 내게로 오라 하신 주님의
성 경:
여호수아 9:24~27
(수 9: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수 9: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수 9: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수 9: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요 절 :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수 9: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수 9: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수 9: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요 절 :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영화 황산벌을 보면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집에 들러 가족들에게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죽을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계백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이렇게 일갈합니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 것이여!" 생명보다 앞세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히위 사람인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였다가 들통 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속임수를 썼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속임수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명예스러운 삶일 수 있습니다. 비굴하고 구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존심을 보리면서 얻고자 한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그들을 보호하기로 결정합니다, 나아가 그들을 회중을 섬기고 주님의 제단을 돌보는 종으로 삼습니다.
"악이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성전의 일꾸능로 사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 위의 은혜였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긴 이들에 대한 은혜입니다. 생명보다 앞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목숨을 보전하는것도 그처럼 중요한데, 목숨을 넘어선 참 생명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기버림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어떤 자존심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명예까지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악인으로 낙인 찍힌 바로 우리 때문에 말입니다.
생명보다 앞선 것은 없습니다.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자존심까지도 버리신 주님, 그 주님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자존심은 멀찌감치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참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참으로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주님,
먼지 같은 우리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영원한 생명을 이루기까지
주님의 사랑 안에만 머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요섭 목사 - 꿈이있는미래교회
그는 가족을 설득하기 위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계백의 아내가 울부짖으며 이렇게 일갈합니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 것이여!" 생명보다 앞세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히위 사람인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였다가 들통 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속임수를 썼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속임수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명예스러운 삶일 수 있습니다. 비굴하고 구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존심을 보리면서 얻고자 한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그들을 보호하기로 결정합니다, 나아가 그들을 회중을 섬기고 주님의 제단을 돌보는 종으로 삼습니다.
"악이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성전의 일꾸능로 사는 것은 그들에게 은혜 위의 은혜였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긴 이들에 대한 은혜입니다. 생명보다 앞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목숨을 보전하는것도 그처럼 중요한데, 목숨을 넘어선 참 생명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는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기버림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어떤 자존심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명예까지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악인으로 낙인 찍힌 바로 우리 때문에 말입니다.
생명보다 앞선 것은 없습니다.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자존심까지도 버리신 주님, 그 주님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자존심은 멀찌감치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참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참으로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주님,
먼지 같은 우리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영원한 생명을 이루기까지
주님의 사랑 안에만 머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요섭 목사 - 꿈이있는미래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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