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 제3일 : 정당한분노?

w.j.lee 2023. 2. 24. 00:00

정당한분노?

2023년 2월 24일 금요일

 

요나 4:1~11

(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욘 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욘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욘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욘 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욘 4: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욘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욘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욘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욘4:9)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요나! 

하나님의 명을 거절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물고기에 삼켜진 그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뭍으로 뱉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강퍅한 제국의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두지만 요나는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요나의 감정은 여과 없이 표출됩니다.

그의 감정은 소용돌이치고 하나님을 향한 언어도 거침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 이럴 줄 알고 제가 도망하려 했던 겁니다.

당신은 자비하시고 노하시길 더디하셔서 생각을 바꾸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주십시오. ...실없는 소리나 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물어도 꿍한 요나는 대답도 없이 이 성읍이 어찌 되나 지켜봅니다. 

그가 앉은 자리에 그늘을 만들어준 박넝쿨에 흐뭇해하다가 그 식물이 벌레 먹어 시들자 또 화를 냅니다.

박넝쿨이 말랐다고 화를 내는게 옳으냐 묻자 "성내서 죽 더라도 옳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수고도 아니한 박넝쿨이 마른 것을 아까워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분별없는 수많은 생명과 가축을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고 되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는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격하며 그 은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우리의 잘다란 편의와 유익에 사로잡혀 온갖 기분과 감정에 놀아납니다.

요나처럼 자존심에 목숨을 걸고 작은 유익에 일희일비하며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께 대들기도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럴 줄 알았다며 다시스로의 도망을 정당화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선하심이 문제인 양 자기 생각을 하나님께 강요합니다.

바다에서 건져진 은혜는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박넝쿨이 만든 그늘조차 은총이거늘 마치 제 것을 하나님이 앗아가신 양 화를 냅니다.

요나라는 거울에 비추어 본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많은 이들이 자신의 화와 분노는 정당하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깁니다.

누구 때문에, 그의 어떤 말과 행동이 분노를 유발했다며 원인을 밖에서 찾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조금만 멈추고 들여다 보면 그런 말과 행동 때문이라고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사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분노가 정당한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순절 셋째 날, 

요나의 분노 또한 우리의 이정표로 삼을 만합니 다. 

그의 분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신의 허물과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을 잊은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화를 내고 자신의 작은 유익이 없어졌다고 분노하는 요나의 모습과 우리는 얼마나 겹쳐집니까?

40일의 여정 중 우리의 분노나 짜증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발견하고,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고약한 습성을 조금이라도 멈추게 해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

 

기도
주님, 

감정에 휘둘리고 노예가 되어 삶이 헝클어지는 때가 많습니다. 

작은 유익과 손해에 눈이 멀어 제멋대로 감정을 휘두르지 않도록,

특히나 화를 내고는 저 자신을 정당화하는 고약한 짓을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여정 동안 주님의 기쁨에 기뻐하며 주께서 안타까워하는 것에

저도 아파할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 십시오.

아멘


출처 : 동행하는 길(송대선, 지강유철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