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아파하는 너를 안다는 것

w.j.lee 2024. 1. 6. 12:14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 소서

 

시편 139:1~12

(시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 139: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시 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시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시 139: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아파하는 너를 안다는 것

 

시편 139편을 읽을 때마다 11절에 오래 시선이 머뭅니다. 

시인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 라 " 새번역은 부분을 더 생생한 언어로 옮겼습니다.

"아, 어둠이 와락 나에게 달려들어서, 나를 비추던 빛이 밤처럼 되어라."

이것은 가벼운 넋두리가 아니라 고통으로 멍든 영혼의 절규입니다.

처절한 아픔과 분노로 몸부림 치는 울부짖음입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었을까요?

 

시편 139편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신비한 체험과 고백을 담은 노래가 아닙니다.

저명한 구약학자 에리히 쳉어는 이 시를 '구조적인 폭력에 맞서는 처절한 싸움'의 노래로 소개합니다.

그는 문제 상황을 19~22절에서 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분노로 가득한 저주의 언어가 폭발합니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악인' 은 이스라엘의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겨냥한 표현입니다.

부와 권력으로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겁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악인들이 자행하는 구조적인 폭력의 희생자들이 오늘날 우리 주변 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절규합니다.

'어둠아, 나를 덮쳐라! 뭐가 좋다고 환한 빛이냐, 차라리 계속 밤이면 좋을 텐데.'

믿음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바다 끝'까지 도망가고 싶은 심정, 차라리 '스올(어두운 죽음의 세계)'에 묻혀 버리고 싶은 절망으로 잠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 관심과 따뜻한 공감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단어가 '알다(히브리어 yada)'입니다.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1).'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2).'  '내 혀의 말을 다 아시고(4).'

성경이 말 하는 '앎'은 객관적 정보를 머리에 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전부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 그의 상처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귀 기울이는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분의 앎(지식)이 '너무 놀라워(6) 그 야말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밤이 낮과 같이(12)' 바뀌는 체험입니다.

그 체험과 고백과 노래가 우리의 아픈 이웃에게 찾아오기를 원합니다.

주변에 구조적인 폭력으로 아파하는 이웃이 있습니까?

 

주님, 

사회적 구조악 때문에 상처와 분노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리 는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아파하는 그들을 아시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도 함께 느끼며 그들의 곁이 되어 줄 수 있게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성현 목사 창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