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생각 한다는 것

3장 3-3. (나가면서) 스크루테이프에게 배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철학

w.j.lee 2024. 9. 27. 06:51

 

3장 3-3.  스크루테이프에게 배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철학


생각에 관해 지금까지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루어 보았습니 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왜 생각해야 할지, 이런 것들을 악마에게 배워 볼 생각을 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1장에서 이미 스크루테이프를 등장시켰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 이 일어나는가?"

답은 쉽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악마의 유 혹에 쉽게 넘어간다."

 

교회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반지성 주의가 넘쳐흐르는 교회라면 통하지 않겠지요? 

그러면 지극히 드물지만) 지성주의가 지배하는 교회는 예외일까요?

지성을 내세우면서 어떤 주장의 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만을 금과옥조로 생각한다면 결과는 비슷하겠지요.

 

어떤 경우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그리스 도인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떤 삶의 가치와 삶의 철학을
가져야 할지 악마의 충고에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어떨까요?

 

매우 위험스러운 시도이지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 우드에게 보낸 편지를 곁눈으로 읽어 보면 그 가운데서 소중한 가르침을 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지옥의 철학입니다. 저는 이것을 '지 옥의 존재론'이라 읽습니다.

지옥의 관점, 지옥을 통치하는 악마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산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 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단적으로 말해서, 지옥의 존재 론은 먹느냐, 먹히느냐에 근거해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먹잇감입니다.

이 세상은 '먹을거리들의 총체입니다.

'누가 먹느냐, 누가 먹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열여덟 번째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 하는 데 있다.

즉 나한테 좋은 건 나한테 좋은 거고, 너한테 좋은 건 너한테 좋은 거지.

누군가 얻은 게 있으면 다른 누군 가는 잃은 게 있는 법이다.

심지어 무생물도 다른 사물들을 공간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러 니까 자기가 확장되려면 다른 사물을 밀어내거나 흡수해야 만 하지.

자아가 확장될 때도 마찬가지야.

짐승한테 흡수란 잡아먹는 것이고, 우리한테 흡수란 강한 자아가 약한 자아의 의지와 자유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다."

 

지옥의 철학은 이렇게 나는 나, 너는 너, 그야말로 '각자도 생'을 삶의 원리로 삼을 뿐 아니라 모든 관계를 경쟁 관계로 보고 이기는가 지는가, 먹는가 먹히는가로 바라봅니다. 

그런 데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악마에게 설명하는 '원수의 철학은 이와 정반대의 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원수, 곧 그리스도가 볼 때 만물은 여러 개인 동시에 어쨌든 하나라구.

한 자아한테 좋은 것은 다른 자아한테도 좋은 것이고. 그는 이 불가능한 일을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이 천편일률적인 만병통치약은 그 작자가 하는 모든 일뿐 아니라 심지어 그 작자의 모든 성품에서도 ... 감지해 낼 수가 있 다.

... 원수는 또 유기체라는 걸 물질계에 만들어 냈지.

유기체란 각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어 있는 자연의 숙명을 거슬러 서로 협력하게 되어 있는 음란한 발명품이야."

 

악마 스크루테이프의 논리는 (만일 그의 생각을 논리라 부를 수 있다면) 명료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어떤 다른 것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각각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만일 이것이 옳다면 타자는 자기의 존재에 걸림돌이고 방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서로의 관계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삶의 상황에 절망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그런 세상이니 내가 먹히지 않고 오히려 잡아먹는 방식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느냐 하는 물음의 답을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서 서로 돌보고 세워 주는 '원수[그리스도]의 철학'에서 찾지 않고 '지옥의 철학'에서 찾는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지옥의 철학', 곧 경쟁 과 투쟁의 존재론, 다시 말해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것"이라는 철학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악마의 존재, 먹느냐, 먹히느냐는 철학을 가진 자의 존재가 결핍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결핍은 다른 말로 배고픔, 허기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채울 수 없는 배고픔, 메꿀 수 없는 허기, 모자람 속에 있는 결핍이 있는 한 생각을 추동하는 힘은 단 하나, 곧 '어떻게 나의 허기, 나의 결핍, 나의 배고픔 을 채울 수 있는가?'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나를 향해 끌어들이고, 내가 흡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타인을 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여덟 번째 편지에서 웜우드에게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원수는 자신을 작게 복사해 놓은 이 혐오스러운 인간들로 우주를 우글우글 채울 생각을 정말로 하고 있다구.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그는 뿜어내고 싶어 하지.

우리는 비어 있어 채워져야 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흐른다.

우리의 전쟁 목적은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사탄)께서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는 세상이지만, 원수가 바라는 건 원수 자신과 결합했으면서도 여전히 구별되는 존재들로 가 득찬 세상이야."

 

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 나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넘치도록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후하다는 말입니다. 

현실은 다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충만함, 넘침의 상태일 때 나의 것이 타인에게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존재는 충만함 자체입니다.

그분은 '만유 가운 데 만유'이십니다.

어떤 부족이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과 연합한 사람, 하나 된 공동체는 스크루테이프가 말하듯이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넘 쳐흘러 타인들과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가운데 만일 거주한다면 삶의 방식, 생각의 방식은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넘쳐흘러 타인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생 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생각도 중요하고 행동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떤 존재, 어 떤 존재 연관 속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함을 스크루테이프를 통해서 배웁니다. 

만일 지옥의 삶의 방식 가운데 있다면 오직 나 중심으로, 지옥이 지향하는 이념,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이고, 만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방식에 거한다면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타인의 필요와 고통을 생각하고 나에게 좋은 것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이웃에게 좋은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타인과 이웃에게 좋은 것이 결국 에는 나에게, 우리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 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 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 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빌 4:4-8, 새번역).


출처 : 생각 한다는 것 (강영안 지음.  두란노 출판.)

'쉼터 > 생각 한다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지 & 차례  (0) 2024.09.27
들어가면서  (5) 2024.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