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실재이다(마태복음 6:25-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 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도성인신道成人身을 선언 합니다.
공관복음서는 이에 호응하듯 주님은 사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다며 인신성도人身成道를 선언 합니다.
거룩한 말씀과 뜻은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그 말씀을 받들어 몸으로 살아내는 이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말씀이 참이요 실재라는 것,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의 근거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야 합니다.
- 분별하는 믿음
광야에서 예수께서 받으신 도전이 그러했습니다.
사탄은 떡,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후에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실 것'(마 6:33)이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사탄의 도전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도전입니다.
애굽을 탈출해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은 뒤쫓는 바로의 군대와 가로막힌 바다 사이에 있습니다.
그들에겐 군대와 파도가 현실입니다.
이 현실 앞에서 원망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 가나안으로 이끄신다는 것이 실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말씀을 이루실지 여쭙습니다.
그리고 듣고 전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배를 탄 276명의 사람들, 선장과 선주, 군인과 상인들은 광풍 유라굴로 앞에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죄수인 사도 바울은 '네가 황제 앞에 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그들을 위로하며 안전을 약속(행 27장)합니다.
죄수 바울의 선언이 실재가 되었습니다.
믿는 이는 덮쳐오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재인지 눈앞의 것이 실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이 실재임을 체험하면 그는 점차로 주님의 말씀대로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요.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광풍에 떠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재가 아니라 현실을 실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입니다.
염려는 낙심으로 이어지고 절망에 빠뜨립니다.
말씀이 실재라는 믿음을 놓치면 절망에 빠져 끝내 죽음에 이릅니다.
그러나 말씀이 실재임을 믿는 이는 절망의 정점인 죽음 너머를 소망하며 부활의 신앙에 이르게 됩니다.
-말씀과 삶의 하나 됨
한 엄마가 마하트마 간디에게 '우리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말해주길 청했더니 한 달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한 달 후 갔더니 다시 한 달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두 달 후 간디는 '사탕은 이빨을 썩게 하니 먹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고 아이 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묻습니다.
그 한마디를 하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렸냐고요.
간디가 그랬다지요.
“저도 이를 썩게 하는 걸 알면서도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나는 먹으면서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말이 입술이 아니라 몸과 영혼에서 우러나오면 그 말은 힘이 있어서 상대의 귀에만 머물지 않고 몸에 닿고 영혼에 닿겠지요.
믿음의 길을 더듬는 중에 만난 신앙인의 권면을 기억합니 다.
"아직도 더 들어야 할 말씀과 배워야 할 말씀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이 부족하거나 배움이 부족하기보다는 말씀을 몸에 녹여낸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한 말씀을 몸과 하나 되게 살아가는 이가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들 길잃은 듯 헤메는 거지요"
말씀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 성인의 몫만은 아닙니다.
신앙인은 제게 주어진 한 말씀 붙잡고 몸에 녹여내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몸이 되면 말씀이 몸을 이끌어갑니다.
기도
예수님,
제가 가볍고 지켜지지 않는 말의 소란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눈앞의 문제들에 휘둘려, 현실이 다 그런 거라며 변명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여, 말씀이 실재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십시오.
대림의 시간에 살아계신 말씀을 제 마음에 모시고 삶을 통해 그 말씀이 실재요, 저를 주께로 이끄는 사랑임을 다시금 체험케 하십시오.
아멘
출처 : 대림묵상집 - 보일示 모실侍(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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