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래(요한복음 2:13-17)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요2:16b
믿음의 걸음이 시작된 때를 더듬어보면 거기에는 주께서 베푸신 사랑과 용서, 은혜가 녹아있습니다.
내게 그럴만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지요. 복음의 본질은 거래가 중심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거래의 사건입니다.
이 비거래 사건이 우리를 사로잡았고 신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거래가 삶의 방식인 땅에서 은총과 사랑과 용서라는 비거래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거래란 없습니다.
비거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가 있을 뿐입니 다.
거래의 세상은 비거래를 이해할 수 없었고 끝내 주님을 거절하고 맙니다.
장사하는 집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우 양을 내쫓고 환전하는 상을 엎으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 용서를 체험하는 곳이며 은혜를 입는 곳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사랑에 감격하는 곳이며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 체험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용서와 은혜의 장소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거래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은혜에 힘입어 세상에 그 사랑을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익을 다투고 조건을 따 지는 거래의 삶을 성전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주님의 교회를 물들인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거꾸로 되면 세상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비거래 사건, 용서와 나눔
거래의 방식이 아니고는 이 땅에서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은 가격으로 환산됩니다.
가격은 가치를 결정합니다.
비싼 것은 귀하게 여기고 싼 것은 하찮게 여깁니다.
금융상품이 관련 된 노동의 가치는 매우 높고 땀흘리는 노동은 낮게 여기기도 합 니다.
누가 정한 것인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우리는 이 가격과 거래의 조건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께서 모든 거래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세금 논쟁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거래가 없을 수 없겠지만 믿는 이는 거래에 잠식당하지 말고 깨어있어 사랑이 흘러야 할 곳, 은총과 용서가 베풀어져야 할 곳에 하나님의 방식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는 거래나 비거래냐를 순간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비거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용서는 벼르기, 묻어두기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 지난번에 그러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말한다면 지난번의 용서가 진짜 용서였을까요?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 줄테니 다 음부턴 그러면 혼난다!"
다음을 벼르는 것은 어떤 용서인가요?
거래가 전제된 용서란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이지요.
베드로는 큰 맘 먹고 일곱 번의 용서면 되지 않을까 여쭈었지만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걸까요?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용서에 터하고 있음을 절절히 느끼며 그 사랑에 바탕하고 있음을 기억해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백 데나리온 빚진 이를 멱살 잡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느냐며 그 정도는 이방 사람도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 같아 보이지만 착각입니다.
정확한 계산에 따른 거래입니다.
주님은 갚을 수 없는 이에게 베풀라(눅14:13),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돌아오지 않도록 하는 것, 흘러가게 하고 잊는 것, 이는 사랑과 은총에 젖은 이가 살아가는 비거래의 삶이며 하나님 안에 머무는 길입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이 성탄을 기다리는 때에 더 절절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기도
예수님,
주님을 따른다 고백하는 제가 거래에 찌든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작은 손해에 얼굴 붉히고, 이익의 산술에 재빨랐습니다.
손가락 꼽으며 벼르면서도 용서라는 주님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제발 오늘 이 하루 중에 당신이 보이신 비거래가 제 손과 발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강권하여 주십시오.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아! 이거군요' 하며 감사하는 한날을 맞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대림묵상집 - 보일示 모실侍(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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