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자(마가복음 1:9-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11)
신학자 헨리 나웬은 20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끼쳤지만 정작 자신은 불안에 휩싸였던 사람입니 다.
그러다 공동체 라르쉬에서 중증 장애인들과 살면서,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기쁨 충만한 삶을 보았습니다.
애쓰면서도 겪는 '자신의 불안'과 연약함에도 누리는 '그들의 기쁨', 이 의문이 오늘의 말씀을 통해 환해졌습니다.
'너는 내 사랑 하는 이요, 기뻐하는 아들이라 누구든 무엇을 이루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받는 이'라는 믿음을 간직한 이가 자녀임을 몸으로 깨우친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그를 붙잡은 후 그는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이가 되었습니다.
-사랑받는 이(the Beloved)
나웬에게 확신을 준 이 한마디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의 임재와 함께 들려온 음성입니다.
세례는 사역 이전에 행해진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향한 첫 결단이며 지 향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늘의 음성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당신의 아들로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 음성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근원적인 관계 자체가 복음이며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이셨고 동시에 깊은 신뢰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자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가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순종이 십자가를 낳은 것 입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면 '사랑하는 이'로 살아가게 되고 주어진 사명 또한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음성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며 확증입니다.
이것은 방편으로 만들어지거나 한시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것이며 변할 수 없는 영원에 터 한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구원의 새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 아버지'이심을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을 믿는 이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이의 길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사랑받는 이(the Beloved)'로 받아들여졌음을 믿는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압니다.
생은 사랑하는 분의 사랑에 의지하는 것, 아버지와 깊은 친밀을 위해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그는 이 길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사랑받는 이는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일러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그 또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랑이 자격이나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주어졌음을 알기에 받은 사랑을 움켜쥐고 제 소유로 삼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부족함을 알기에 겸손하며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넓혀주고 있음을 체험하기에 용기를 얻습니다.
스스로야 어림없는 인생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해 사랑이 되려 합니다.
'사랑받는 이'라는 이 믿음을 품지 못하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지배합니다.
거절의 두려움에 지배되는 이는 다른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에게 거절당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갈한 영혼은 사랑인 아버지를 만나기 까지 부유(浮遊)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들린 음성은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목에서다시 들립니다.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한없는 지지와 격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백부장은 '그는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증언합니다.
사랑받는 이는 끝내 그분의 아들로 드러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받는 이'라는 말씀을 살아내셔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걸으라십니다.
기도
주님, 사랑받는 자녀라는 이 놀라운 복음을 자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애쓰다 홀로 낙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보이신 것, 사랑받는 아들로 아버지와 동행한 그 걸음을 기억하며 저도 아버지와 더 깊은 관계로 이끌리길 원합니다.
이 하루 어디에 있든지 아버지 하나님을 먼저 의식하며 감사하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대림묵상집 - 보일示 모실侍(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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