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지기(시편 120편)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시 120:5-6)
시편 120~134편은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온 이들이 성전 계단을 오르며 이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주께 나아가는 이는 주님을 뵈려는 마음을 토로합니다.
삶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찾아가는 마음은 '모시려는 마음'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시간, 우리의 마음 역시 순례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 익숙해져 물들다.
주님 앞에 머무는 하루가 나머지 엿새에 영향을 끼쳐야 하 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전에 머물며 은총에 젖어든 감격은 성전 문을 나서면 화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쉬 밀려납니다.
시편 시인의 고백처럼 헛된 말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주님 없는 시간들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어느새 주님과 동떨어진 자기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이런 처지를 한마디로 말합니다.
'내가 메섹의 땅에 게달의 장막에 너무 오래 머물렀구나'
오래 머물면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들면 본래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변명을 둘러대고는 어쩔 수 없다며 아예 주저앉아 버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오래 머물렀다 할지라도 그 자리가 자신의 본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주님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기에 하나님 계신 곳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누렸던 은총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 은총의 기억에 힘입어 시인은 이제는 일어나야 하고, 익숙한 것을 등져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 등질 결심
어느새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익숙한 것들과 등지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등지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야곱도 아버지의 집을 등지고서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은 늘 등짐으로 시작됩니다.
등지고서야 보입니다. 거리를 두고서야 자신이 어디에 물들 었는지, 엉뚱한 것을 붙잡느라 정작 놓친 것이 무엇인지 보입니 다. 등지고서야 눈이 밝아지고 삶의 순위가 뒤엉켜졌음을 발견합 니다. 시인은 자신이 거짓되고 혼돈된 말에 휩쓸리고 평화를 미 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음을 발견합니다. 빛인 분을 향하 고서야 내 어둠의 그늘에서 일어난 일들이 보입니다.
등지고서야 보입니다.
등지고 주님을 향한 것이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임을.
사실 나는 내 영혼의 탄식조차 듣지 못 했는데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내 마음을 움직여 일어나게 하셨음을, 주께 나아갈 힘을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익숙한 '지금 여기' 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고백한 것을, 주님은 당신을 향한 '예'라 는 고백으로 받아주십니다.
내가 나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서게 하셨습니다.
등진 것이야말로 그분 품에 안기는 것이었습 니다.
등지고서야 보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우리 믿음의 기억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그분을 맞으려는 이 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계절에 우리는 어디쯤 머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다행히도 이 여정은 흑암을 더듬는 여정이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이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준 여정입니다.
순례자들이 모범을 보였고, 처음 성탄을 맞이한 이들이 들려주는 거룩한 이야기들이 넉넉합니다.
아울러 우리 또한 친밀한 사랑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기도
주님,
세상은 참 힘이 셉니다.
어느새 주님의 사랑과 화평을 잊고 세상의 방식에 젖은 줄도 모른 채 지내곤 합니다.
시인을 통해 제가 무엇을 잊었는지, 무엇에 익숙해 져서 주님과의 친밀함을 놓쳤는지 살피게 하시고 발견케 하십시오.
그리고 떨쳐 일어날 힘과 은총을 주십시오.
등지고 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모함에 젖어드는 복된 여정이 되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대림묵상집 - 보일示 모실侍(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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