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얇은 곳(시편 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 길을 나서는 마음
생활하는 공간은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익숙한 것에 둘러싸인 삶은 굳이 경계할 것이 없기에 습관처럼 살아가곤 합니다.
집을 떠나 성전으로 가는 순례자의 길에는 낯선 것, 안전을 위협하는 것 등 예기치 않은 어려움들이 도사립니다.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생명의 위협도 가까이 있습니다.
담대하게 출발하였지만, 어느새 염려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 순례의 여정입니다.
시인은 눈을 듭니다(1절).
눈을 드는 것은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나섰지만 혼자로는 어림없는 이 여정을 주께서 이끄시길 청하는 간절함과 갈급함입니다.
순례자의 길은 돌보시는 주의 손길에 의해 성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
거룩한 산 시온으로 가는 중에는 여러 산이 있고 산마다 이교의 산당이 있습니다.
산당을 차지한 신들은 길 위에 있는 인생의 연약함을 꼬집고 두려움을 상기시킵니다.
지친 발걸음, 한밤의 두려움, 갈림길마다 부딪히는 유혹과 난관 앞에서 '내게 오라'고 부릅니다.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제사 연기는 '네 문제와 어려움이 이곳에서 풀리고 안전해질 것'이라는 메시지처럼 보입니다.
길 위에 서면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안전한 곳에서 지내왔는지, 지금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전까지 자신이 누렸던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 같은 삶인지도 말입니다.
순례자에게 이산 저산 산당에서 피어오르는 제사 연기는 가뭇없이 사라질 뿐입니다.
그는 연기 너머의 하늘을 지으신 분을 우러릅니다.
자신을 둘러싼 산과 산당은 제아무리 위용을 부려도 지음받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순례자가 길을 나선 것은 안전장치를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 계신 성전에 이르기 위함이고, 길 위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통해 가까이 계신 주님을 체험하고자 함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취하려는 안전과 보호막을 내려놓고 주님을 우러를 때 주께서 그와 동행하며 돌보아 주심을 체험합니다. 순례자는 길 위에서 인생이란 길과 같으며 하나님은 이 길 위에 계시고 길 위의 생을 지켜주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길지 않은 이 시편에 '지킨다'라는 표현이 여덟 번이나 반복 되는 것은 순례자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확신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길에서 누리는 '얇은 막'(thin places)
고대 켈틱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순례의 여정을 '막이 얇 은 곳들'(thin places)과의 만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막이 얇 은 곳들이란 하늘과 땅이 맞닿아 이 세상과 저세상이 유독 서로 가까운 곳, 고요히 있으면 하나님의 속삭이심을 들을 수 있고 그 분의 현존에 감싸여 새로운 눈을 뜨는 곳을 의미합니다.
막이 얇은 곳은 순례자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낯선 곳, 스스로는 아무런 방어막을 갖추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그분의 기다리심을 체험합니다.
낯선 곳이라 여겼지만, 그곳은 하나님 품이었습니다.
거기서 순례자는 이 모든 여정이 '이 순간'을 위해 마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얇은 막에서 느끼고 누리고 체험하는 하나님의 손길과 도우심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합니다.
길을 떠난 사람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만나 덧입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께서 기다리는 막이 얇은 곳은 순례자에게만 주어지는 은혜가 아닙니다.
일상의 시간을 잠시 미루어두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온전히 맞이하는 이에게도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주께서 홀로 찾았던 고요한 곳과 우리에게 일러주신 은밀한 골방도 막이 얇은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점점 더 가까이 오고 계심을 새기며 빈 마음이 되고자 하는 가난한 영혼이 우러르는 눈길에 얇은 막 너머가 열립니다.
기도
저를 지켜주시는 주님,
저희가 길 위의 여정 중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자주 제 어깨 위에 앉은 일상의 더께를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시오.
이것저것 대책을 찾아 헤매며 당신을 잊는 바보스러운 짓을 멈추게 하시고
길 위에서 당신이 마련하신 얇은 막에서 당신을 만나게 하시고
당신이 얼마나 친절하고 세밀하신 분인지 감사로 고백하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대림묵상집 - 보일示 모실侍(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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