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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w.j.lee 2025. 1. 23. 01:04

 

단원 김홍도

 

대체적으로 조선시대 후기, 풍속도의 최고화가 3인을 꼽으라면 단원 김홍도와 그보다 10년 쯤 먼저 태어난 김득신, 김홍도보다 13년 어린 혜원 신윤복을 꼽는다.

그 뒤를 이어 영화 취화선에서 재조명되었던 오원(吾園: 나도 단원의 이고, 혜원의 이라고 주장한) 장승업으로 이어진다.

 

이들보다 좀 앞서 김홍도의 스승격인 표암 강세황이 있었는데, 그는 문인화가로 詩,書, 畵의 삼절 三絶로서 후대 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인물로, 당대 그림 평론가의 총수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문집 「표암유고」에서 “대(竹)를 그린지 수십 년에 끝까지 깨달음이 없었는데, 창 앞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보고 그려냈더니 약간 진전이 느껴졌다.” 라며 자신의 그림을 혹평하였다.

그런 반면 표암유고의 내용 중 '단원기檀園記'를 통해 김홍도를 평가하길 "다른 화원들은 잘 그리는 그림이 몇 가지뿐이지만, 김홍도는 모든 분야의 그림을 다 잘 그리고, 특히 신선과 화조를 잘 그려 그것만 가지고도 한 세대를 울리며 후대까지 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극찬하였다.

 

단원 김홍도, 표암의 평가대로 신선, 화조, 초충 등의 그림에도 능했던 그가 새로운 화풍의 인물과 풍속화를 그려내면서 조선 화단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선시대 서민생활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다룬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익살과 구수함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김홍도는 배경을 생략한 원형 圓形 구도를 즐겨 했고, 생생한 얼굴 모습과 옷 주름의 필치까지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동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무동'에 나오는 악기는 북, 장고, 피리 둘, 대금, 해금이고 6인의 악사들이 둘러앉은 형태로 보아 삼현육각, 즉 육잽이의 구성이다.

고운 얼굴의 어린 무동 舞童이 기다란 소매를 펼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추고 있다.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춘다.'는 옛말이 있어선지, 이 무동의 소매도 한정없이 길어 보인다.

무동을 보고 있노라니 조지훈의 시, '승무'가 생각난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씨름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씨름' 역시 원형구도로 배치가 되어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스물 두 명이다.

선수 두 명과 엿장수, 위쪽에 13인과 아래쪽에 그 반수 이하인 6명, 씨름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분수가 되도록 인원을 거꾸로 배치하였고, 오른쪽 두 사람이 뒤로 넘어지는 모습으로 절박한 움직임을 강조한다.

22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그 하나하나의 표현이 너무나 해학적이고 재미있게 표현 되어 있는 이 그림은 오늘날의 조감도 (새가 날며 보는 높이에서 보는)처럼 그림을 보는 위치도 높은 위치를 선택했다.

많은 인원이 등장하기에 보는 높이가 안 맞으면 전체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선수들의 옆에 심판을 배치했다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안으로만 향하게 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엿장수를 배치해 그가 바깥을 바라보게 하여 시선의 단조로 움을 해결하였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씨름의 승부는 뒤쪽 선수를 들어 올리는 앞쪽사람이 이기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통상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땅쪽을 바라본다.

앞쪽 사람은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힘이 있어 꼭 이기겠다는 자신감 속에 위쪽을 바라보는데, 뒤쪽의 들린 사람은 눈이 동그랗고 양미간이 푹 패어 자신감을 잃고 땅을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히 지게 되어 있다.

 

*서당/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서당'을 보면 가운데 앉아 있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훈장이 물어본 질문에 대답을 못해 매 맞을 걱정을 하며 울고 있는 모습과,

의리를 내세워 훈장에게 들리지 않게 손을 가리고 정답을 알려주는 아이,

책을 슬그머니 아이 앞으로 밀어서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이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훈장은, 그의 옷이 많이 구겨져 있음을 볼 때, 온몸이 흔들리며 웃음을 참아내느라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다.

 

세 그림을 통해서 볼 때 공통으로 등장하는 아이는 생김새로 볼 때 같은 인물인 것 같다.

바쁘게도 그는 놀이방에서 춤추랴, 씨름판에서 엿 장사 하랴, 서당에서 공부까지 해야 하니 저렇듯 못하는 공부에 눈물짓지, 언제 착실하게 예습 복습하여 공부를 잘 할 수 있을런지..

 

평범한 중인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홍도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의 집안에 어느 누구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도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천재적인 재주를 먼저 알아본 스승 강세황이 그를 거두어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시와 글을 함께 가르쳤으므로 김홍도는 시·서·화를 두루 익혀, 여느 중인 출신의 환쟁이들과는 다르게자신의 그림에 직접 지은 시를 써 넣을 수 있는 화원으로 성장하였다.

 

이미 10대 때부터 능력을 인정을 받았던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채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서 인정을 받아 왕의 어진, 어람용 의궤에 들어갈 각종 그림을 그리는 등 국가 차원의 중요한 그림을 그리는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같이 사진기가 없는 시절이다 보니, 왕의 지시에 따라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왕에게 보여 주는 역할을 한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풍속화이다.

 

왕의 지시로 각 지방을 두루 다니며 산하를 그리는 훈련을 한 후에

그는 일본 쓰시마 섬으로 가서 지도를 그려오기도 하고,

중국에도 다녀오면서 외국의 사정을 왕에게 알리는 역할까지 하였으니 화가로서 참으로 특별한 경험을 한 그이다.

 

신선도를 비롯해 꽃과 나무, 동물 등을 그린 정물화와 금강산 등을 그린 산수화, 건축물이나 궁중에서 하는 행사를 재연하는 그림, 책에 들어가는 삽화 및 절에서 다루어지는 불화까지 그렸으니 실로 모든 종류의 그림에 손을 댄 듯하다.

게다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거문고 연주도 수준급이었다고 하니, 그 야말로 예술방면으로는 재주가 남달랐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토록 비범한 재주를 가진 천재화가이건만 그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실수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 같은 후손들은 헷갈리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씨름의 일부

'씨름'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잘 보면 우측 아래쪽에 땅을 짚고 있는 사람의 오른 손이 어색하다.

땅을 짚고 있는 손은 분명 오른 손인 데 손가락은 왼손의 그것처럼 거꾸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저히 저런 모양이 나올 수 없는데 왜 저렇게 그렸을까...

*무동의 일부 우그위 은 '무동'이라는 제목의 풍속화이다.

잘 살펴보면 이 춤추는 아이의 오른발도 좀 어색하다.

분명 앞으로 향해야 되는데 뒤쪽으로 돌아가 있는 모양새는 도저히 불가능한 자세다.

뿐만 아니라 우측에서 해금을 켜는 사람의 왼손은 기타를 치듯이 엄지손가락이 위로 나오고, 네 손 가락은 아래로 감싸 손가락 끝만 보여야 하는 데 거꾸로 손등이 다 보인다.

 

활쏘기/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은 활쏘기라는 그림이다. 

여기서도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잘 살펴보면 활 쏘는 사람이 왼손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데, 왼발이 앞으로 나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왼손으로 당길 땐 오른발이 나가야 활이 쏴지지 않겠는가.

천하의 김 홍도가 단순한 실수를 한 건지, 관람자의 재미를 위해 그림마다 '숨은그림찾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빨래터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빨래터'의 가운데에서 빨래하는 여인의 손도 어색하다. 

왼손에 빨래 방망이를 들었으니 당연히 빨래를 잡고 있는 손은 오른손이어야 하는데 왼손만 두개 달린 사람 처럼 보이도록 왼팔의 위치로 그려져 있다. 

억지로 오른손이라 하더라도 그러면 팔의 길이가 맞지 않는다. 

 

*계변 가에서 신윤복의 그림)

김홍도는 키가 크고 훤칠하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성격은 무척 내성적이며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그림 중 신윤복의 그림인 '계변에서'는 사내가 냇가에서 목욕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 을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김홍도의 그 림을 보면 여인들의 뒤에 숨어서, 그것도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훔쳐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노상파안/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란 것은 그림 '노상파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갓을 쓴 양반이 아이를 업고 가는 것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스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는 대목에서도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웃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림감상/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림감상'을 보면 몇 명이 둘러서서 어렵게 구했을 듯한 희귀한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그는 부채 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혹자는 이 그림을 평하면서 그림에 침이 튈까 걱정하여 부채로 입을 가리고 설명을 한다고 하지만, 위 그림 중 씨름판에서 마저 얼굴을 가린 것과 여타 여러 그림들을 통해서 보아도 침이 뭘까 조심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그는 습관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듯하다.

 

여러 그림에서 얼굴을 가린 사람이 김홍도 자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조선시대 풍속화는 이런 저런 설명이 전해지지 않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 중에 적당한 이유를 들며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혹자의 말대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 김홍도 본인이 맞다면, 그는 성격이 소심하고 수줍음을 잘타는 성격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출처 : 잡설산책 (김연태 지음, 글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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