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탐욕스러운 형의 최후

w.j.lee 2016. 2. 18. 18:20


탐욕스러운 형의 최후


구례 문척면을 지나는 섬진강.


문척면에는 놀부와 흥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형제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 구례 문척면 어떤 마을에 박 씨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애가 깊었지만 유독 큰아들을 예뻐하는

할머니나 부모님 때문에 동생은 항시 뒷전이었다.

어려서는 형도 그런 동생을 위해주는 것 같더니

나이가 들면서 점차 형은 동생에게 군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오냐오냐 하니까 형의 심성이 조금씩 비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둘 다 장가를 가게 되었다.

형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동생은 옆 마을로 분가를 하였다.

말이 모시고 사는 것이지 사실은 부모님이 형 내외를 보살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본가에 와서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오직 큰 아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가 형제에게 유언을 하였다.

"큰 애는 조상님 제사를 모셔야 하니 집이랑 전답 대부분을 주마.

작은 애는 재 너머 밭 다섯 마지기를 줄 테니 서운해하지 마라."

평생을 큰 아들만 위하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도 형을 우선시하였다. 그

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만한데도 동생은 군말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뿐이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달랐다. 작은 며느리는 그런 꼴을 못 보겠다며 큰집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그래도 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틈만 나면 형에게 달려가 도울 일이 없는지 살피곤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형은 생활이 더욱 문란해지기 시작하였다.

적지 않은 아버지 재산 대부분을 물려받은 데다

어려서부터 놀기 좋아했던 형의 씀씀이가 어떠했겠는가.

형의 재산을 노린 기생이며 투전판 노름꾼들의

입에 발린 소리에 형은 마치 자신이 무슨 왕자나 된 줄로 착각하였다.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형은 그 많은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말았다.


 


반면 동생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척박한 밭을 일구느라 진땀을 뺐다.

몇 마지기 안 되는 밭이기에 옥토를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겨우 밭을 일군 동생은 그 밭에 도라지를 심었다.

밭 다섯 마지기였기에 도라지를 심어 내다 팔아봐야 겨우 식구들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

그래도 동생은 그 다섯 마지기라도 남겨주신 아버지께 항상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도라지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지나갔다. 다리를 저는 것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노인을 불러 세웠다.

"어르신. 혼자 어딜 가세요? 어르신 혼자 재를 넘기에는 힘들어 보이는데요."

동생은 노인에게 자신이 새참으로 먹기 위해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드렸다.

"젊은이가 참 마음씨가 곱구려.

다리도 아프지만 허기가 져서 힘들었는데 밥도 물도 정말 꿀맛 같소.

그런데 보아하니 도라지 농사를 짓는 것 같은데.."

"네,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도라지라 해서 하기는 하는데 큰 돈은 안 됩니다."

"도라지는 몇 년만 키워도 지력이 약해져서 그냥 두면 썩어버린다오."

노인은 동생의 고민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어르신, 그럼 도라지를 오래 재배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동생이 묻자 한참을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노인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내 평생 터득한 비법을 고작 밥 한 덩이 물 한 모금으로 얻으려 하다니..하하하.

하지만 내 마음이 원하니 내 알려주리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서 도라지 재배에 관한 비법을 전수받게 된다.

보통의 도라지는 몇 년 재배하면 썩어버리는데 비해

노인의 비법으로 재배한 도라지는 다른 도라지보다 훨씬 오래 재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뿌리도 당연히 엄청 컸다.

동생의 도라지는 인삼보다 효능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서 도라지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동생은 무조건 전답을 샀다.

그리하여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와중에 형이 재산을 탕진하고 힘들게 되자

동생은 정기적으로 쌀이며 고기를 사서 형네로 보내주었다.

재산을 나눠주면 또 탕진할 것 같아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직접 보내주기로 하였던 것이다.

부자가 된 동생이 자신에게 전답 일부라도 넘겨주기를 기대하였던 형은

거지 동냥하듯 먹을 것, 입을 것만 직접 건네주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순진한 동생의 재산을 빼앗아 볼 양으로 음흉한 계략을 꾸몄다.



하루는 동생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지리산 산적 두목이다. 너희 선친 묘에서 유골을 파헤쳐 보관하고 있다.

듣자 하니 재산이 많다는데, 아버지 유골을 찾고 싶거든 그

믐날 밤 해시에 문척 다리 밑으로 돈 천 냥을 가지고 와라.

만약 관가에 알린다면 유골은 고사하고 너희 가족을 몰살시켜 버릴 것이다."

동생이 괴편지를 받아 들고는 대경실색하여 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 묘소가 파헤쳐져 있고 유골이 사라지고 없었다.

깜짝 놀란 동생이 형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형이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지금 아버지 유골이 사라졌는데 돈 천 냥이 문제냐?

나는 돈이 없으니 네가 돈을 마련해 보도록 해라."

"형님, 설령 돈을 준들 아버지 유골을 순순히 내줄까요?"

형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따를 줄 알았던 동생이 의외로 미적대자 형이 화를 냈다.

"아니, 지금 돈 걱정하는 거냐?

내가 재산만 날리지 않았다면 나는 천 냥이 아니라 만 냥도 내주겠다."

형이 하도 닦달을 하자 동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집으로 돌아가서 돈을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생을 형의 말이라면 거역해 본 적이 없는 동생이

이번에도 형의 말을 따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조카가 다가오며 말했다.

"숙부, 어찌 도적놈들의 뜻대로 하신단 말입니까?

비록 나이가 어리고 힘은 없지만 제가 나서서 그 도적놈을 한 칼에 베어버리겠습니다."

조카의 말에 동생이 펄쩍 뛰며 만류하였다.

"조카의 뜻은 잘 알겠지만, 너무 무모한 일이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형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아들을 당장이라도 쥐어박을 듯이 다그쳤다.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는 것이냐?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단 말이냐?"

그러자 오히려 동생이 형을 말렸다. 동

생은 그믐날 밤 해시에 약속대로 돈 천 냥을 가지고 문척 다리 밑으로 갔다. 그

믐밤이라 사방이 캄캄하여 한 치 앞도 알아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잠시 후 복면을 쓴 도적이 동생에게로 다가왔다.

"돈을 이리 던져라. 그러면 유골을 넘겨주겠다."

동생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갑자기 어디선가 까만 그림자가 번쩍 하는가 싶더니

복면을 쓴 도적을 덮치면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적의 목을 베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조카였다.

숙부가 그리 신신당부하였건만 무술에 능하고 의협심이 강한 조카가

멀찌감치 떨어져 숙부를 뒤따라왔던 것이다.



도적을 베어 쓰러뜨린 조카가 다가가 복면을 벗겼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조카가 짐승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 아닌가.

동생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쓰러져 있는 도적은 다름 아닌 자신의 형이었다.

평생을 탐욕에 사로잡혀 살았던 형이 천벌을 받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동생은 비탄에 빠져 있는 조카를 거두고자 하였지만

조카는 아버지를 숨지게 한 죄인이라며 3년상을 치른 뒤

머리를 깎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불가에 귀의하였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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