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7일 : 갈라진 홍해 속에 있지 않습니까?
찬 송 : 255장 - 너희 죄 흉악하나
성 경 : 출애굽기 14:15~18
(출 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출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 14: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요 절 :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홍해의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마른 땅이 천국인줄 알고 뒤어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게서 주시는 수많은 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뜨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순 목사 ㅣ 포천교회

출처 : 2016년 하늘양식 중에서
(출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 14: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출 14: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요 절 :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애굽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됩니다. 무엇이 안타까운 것일까요? 홍해 속에서 수장당해서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지 못하고 패한 역사적 결점 때문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기병을 물리치고나서 나의 영광을 드러날 때에, 이집트 사람은 비로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18, 새번역)
애굽 사람들에 대한 가장 큰 안타까움은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늦은 깨달음을 탓합니다.
차라리 열가지 재앙이 있기전, 갈라진 홍해 속에 뛰어들기 전, 아니 그보다 더 일찍 여호와게서 하나님임을 믿고 두려워 했다면 애굽 사람들의 슬픈 결말, 애굽의 나라가 장자를 잃고 위기와 고난 속에서 혼란스러운 일을 당해야만 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과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 하나님께, 모든 잘못과 원망을 돌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무수한 경고와 모세의 권고에 충분히 마음을 돌릴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애굽 사람들의 모습에 빗대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게서 주시는 수많은 메세지, 빈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의의 길을 선택하고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 홍해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완악한 자기 고집을 따라 갈 때가 자주 있습니다. 결국 결말을 마주해서야 후회하며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발이 갈라진 홍해 틈으로 내려간, 끔찍한 결말을 되돌릴 수 없는 때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선경 속 사건들처럼 눈에 보이는 무서운 경고와 싸인(sign)이 있다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앙인들이 죄의 불감증으로 인해 욕망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의 경고가 모자라서도, 싸인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지금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모르고 있거나 말로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홍해로 들어서기 전에 죄의 행보와 완악한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주시는 지속적인 경고와 신호에 반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심으로 따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둘 다 아닙니다.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기병을 물리치고나서 나의 영광을 드러날 때에, 이집트 사람은 비로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18, 새번역)
애굽 사람들에 대한 가장 큰 안타까움은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늦은 깨달음을 탓합니다.
차라리 열가지 재앙이 있기전, 갈라진 홍해 속에 뛰어들기 전, 아니 그보다 더 일찍 여호와게서 하나님임을 믿고 두려워 했다면 애굽 사람들의 슬픈 결말, 애굽의 나라가 장자를 잃고 위기와 고난 속에서 혼란스러운 일을 당해야만 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의 마음과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 하나님께, 모든 잘못과 원망을 돌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무수한 경고와 모세의 권고에 충분히 마음을 돌릴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애굽 사람들의 모습에 빗대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게서 주시는 수많은 메세지, 빈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의의 길을 선택하고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무섭게 입을 벌리고 있는 홍해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완악한 자기 고집을 따라 갈 때가 자주 있습니다. 결국 결말을 마주해서야 후회하며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발이 갈라진 홍해 틈으로 내려간, 끔찍한 결말을 되돌릴 수 없는 때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선경 속 사건들처럼 눈에 보이는 무서운 경고와 싸인(sign)이 있다면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앙인들이 죄의 불감증으로 인해 욕망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의 경고가 모자라서도, 싸인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지금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모르고 있거나 말로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홍해로 들어서기 전에 죄의 행보와 완악한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주시는 지속적인 경고와 신호에 반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심으로 따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홍해의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마른 땅이 천국인줄 알고 뒤어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게서 주시는 수많은 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뜨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영순 목사 ㅣ 포천교회
출처 : 2016년 하늘양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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