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4. 화요일
편견과 고집에 빠져있지 않습니까?
찬 송:
320장 -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성 경:
요나 2:8~10
(욘 2: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 절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 절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단지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 받은 사람의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생각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즉 원수의 나라가 구원 받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셨고, 박넝쿨 사건을 통하여 니느웨 성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실 자기 민족을 괴롭게 한 이들을 싫어한 요나가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이 달랐던 것을 분명합니다.
여기에 믿음의 열쇠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나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곧 주님의 뜻에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단지 구원자로 모셨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주인으로 모시는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면 나는 종입니다. 여기서 절대적인 것은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기준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십니다.
아무리 옳아도 내 생각이면 틀린 것이고, 아닌것 같아도 하나님의 생각이면 옳은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는게 믿음입니다.
40일 금식 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정말 굿 아이디어입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으로 산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믿음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주인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랴 합니다.
나의 오랜 생각과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입에서 "주님,제 생각에는..." 하는 말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생각이 믿음을 허무는 구멍이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더욱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라고 입으로 말할 때, 정말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하나님, 나의 구원자요 주인 되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귀한 사랑을 저에게 심어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을 알았으니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 이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잘 이루어 가도록 동행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민 목사 ㅣ 한사랑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자기 생각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즉 원수의 나라가 구원 받는 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셨고, 박넝쿨 사건을 통하여 니느웨 성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실 자기 민족을 괴롭게 한 이들을 싫어한 요나가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이 달랐던 것을 분명합니다.
여기에 믿음의 열쇠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나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곧 주님의 뜻에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단지 구원자로 모셨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주인으로 모시는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라면 나는 종입니다. 여기서 절대적인 것은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기준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십니다.
아무리 옳아도 내 생각이면 틀린 것이고, 아닌것 같아도 하나님의 생각이면 옳은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는게 믿음입니다.
40일 금식 후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방법론적으로 보면 정말 굿 아이디어입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으로 산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믿음은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주인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랴 합니다.
나의 오랜 생각과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입에서 "주님,제 생각에는..." 하는 말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생각이 믿음을 허무는 구멍이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더욱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라고 입으로 말할 때, 정말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하나님, 나의 구원자요 주인 되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귀한 사랑을 저에게 심어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을 알았으니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합니다. 이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잘 이루어 가도록 동행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민 목사 ㅣ 한사랑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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