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길 위에서라도

w.j.lee 2018. 3. 19. 18:44
2018. 3. 20. 화요일
길 위에서라도


찬  송: 414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성  경: 사도행전 18:1~11
(행 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 18: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행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행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행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행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 18: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요  절 :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오늘은 길 위에서 시간을 다 보냈네!" 요즘처럼 활동 반경이 넓고 교통 체중이 심한 시대에 자주하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아끼며 했던 일들은 대체로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옛날이라고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목했던 고대사회에서는 지금보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이나 그 시간들은 무의미한 시간이었다기보다오히려 생활을 뒤집는 창조적인 시간이엇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지금 고린도에 있는 그는 이전에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와 아덴을 지나왔습니다. 실로 복음을 전한 시간은 그 일을 위해 오고간 시간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그렇다면 길 위의 사도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기억'할 것은 촉구하셨습니다. 출애굽 여정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지키셨던 그 세심한 손길과 불꽃같은 눈동자를 잊지 않을 것을 바라셨습니다.

성경에 정통했던 바울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하나님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님을 생각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라는 소명을 주신 감격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그가 기억하는 주님은 에벤에셀(여기까지 도우셨다:과거),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현재), 여호와 이레(예비하시는 하나님:미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이 아닌 실상으로 다가왔을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입니다.

이 시간들을 낭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말고 에벤에셀과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의 주님을 기억하는 시간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기억은 결국 창조의 씨앗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따로 시간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길 위에서 그 섭리와 사랑을 기억해 내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 꽃피우고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창조의 시간임을 깨닫습니까?


하나님,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셨던 주님을 기억하며 언제 어디서든지 주와 함께 영적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더이상 길 위의 시간이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좋은 것들을 생각해 내고 실행하는 창조적인 순간임을 알 수 있게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영식 목사 ㅣ 힘찬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