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9. 토요일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인생
찬 송:
191장 - 내가 매일 기쁘게
성 경:
누가복음 24:28~35
(눅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눅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 24:30) 그들과 함께 2)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요 절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 24:30) 그들과 함께 2)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요 절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환자를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던 구급대원, 의료진들도 '사망'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모든 행동을 멈춥니다. 생명을 살리려는 더 이상의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암 케리는 가난 때문에 16세의 어린 나이에 구두 수선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8세에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됩니다.
1785년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32세 되던 해에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합니다. 케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선언을 하며 인도로 향했습니다.
1793년 11월 11일 인도 후글리(Hooghly)에 도착한 케리는 복음화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성경을 인도의 여러 방언으로 번역하여 복음이 쉽게 전달되도록 했고, 학교도 세웠습니다.
3년 만에 그가 바라던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근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쉬지 않고 복음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당 한 명의 인도 사람도 개종 시키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5살 난 아들과 아내마저 잃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의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꿈을 기대했습니다. 큰 인쇄 시설을 설치하여 성경 번역 사업이 더 활발히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25년이 지난 1818년 무렵, 그가 세례를 준 600명의 사람과 수천 명의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1819년에는 교회 지도자와 복음 전파자 양성을 위해 세람포대학까지 설립하여,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는 존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케리는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지위도 영향력도 없는 구두 수선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삶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일에 열정을 태우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오늘도 나와 동행함을 믿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작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용인 목사 ㅣ 전동교회
그러나 누구든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특별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암 케리는 가난 때문에 16세의 어린 나이에 구두 수선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18세에 회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게 됩니다.
1785년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32세 되던 해에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합니다. 케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선언을 하며 인도로 향했습니다.
1793년 11월 11일 인도 후글리(Hooghly)에 도착한 케리는 복음화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성경을 인도의 여러 방언으로 번역하여 복음이 쉽게 전달되도록 했고, 학교도 세웠습니다.
3년 만에 그가 바라던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근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쉬지 않고 복음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당 한 명의 인도 사람도 개종 시키지 못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5살 난 아들과 아내마저 잃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의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꿈을 기대했습니다. 큰 인쇄 시설을 설치하여 성경 번역 사업이 더 활발히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25년이 지난 1818년 무렵, 그가 세례를 준 600명의 사람과 수천 명의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1819년에는 교회 지도자와 복음 전파자 양성을 위해 세람포대학까지 설립하여,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는 존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케리는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지위도 영향력도 없는 구두 수선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삶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일에 열정을 태우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오늘도 나와 동행함을 믿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작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용인 목사 ㅣ 전동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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