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7. 월요일
사람을 바라보는 눈
찬 송:
425장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성 경:
요한복음 9:1~12
(요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요 9: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요 9: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요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요 9: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요 절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9: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요 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요 9: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요 9: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요 9: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요 9: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요 절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한 노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장 차림으로, 그 다음엔 허름한 옷 차림으로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것입니다. 실험하기 전 그는 당연히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더 많은 동정심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정장차림으로구걸했을 때에는 짧은 시간에 적은 돈이나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노숙자까지도 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으로 나서자 모두 외면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동정심'을 베푸는 일조차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를 기준으로 하는것입니다.
외모라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자들은 본인이든 부모든 누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죄값이라고 본 것입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후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의심하며 논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이후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일을 안식일에 하셨다는 이유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느냐 하며 싸웠습니다.
심지어 그의 부모는 출교가 무서워 예수님이 아들을 고쳐 주셨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제자들이나 이웃 사람들, 바리새인들, 심지어 부모까지도 이 시각 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 보지 못하고, 그저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겉모습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기 보다는 그에게 죄를 찾고, 기적의 유무를 논하고, 율법을 범했느냐를 따지고, 출교를 걱정하는 모습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앞 못 보는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를 존귀한 영혼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며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겉모습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외모를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외모에 더 많은신경을 쓰고 투자를 합니다.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를 더욱 피폐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볼 줄 아는 사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의 중심을 보며 다가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아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의 아픔과 슬픔을 헤아리며 위로의 손을 펼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은 목사 - 초운교회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정장차림으로구걸했을 때에는 짧은 시간에 적은 돈이나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노숙자까지도 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으로 나서자 모두 외면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동정심'을 베푸는 일조차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를 기준으로 하는것입니다.
외모라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자들은 본인이든 부모든 누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죄값이라고 본 것입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후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의심하며 논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이후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일을 안식일에 하셨다는 이유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느냐 하며 싸웠습니다.
심지어 그의 부모는 출교가 무서워 예수님이 아들을 고쳐 주셨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제자들이나 이웃 사람들, 바리새인들, 심지어 부모까지도 이 시각 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 보지 못하고, 그저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겉모습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기 보다는 그에게 죄를 찾고, 기적의 유무를 논하고, 율법을 범했느냐를 따지고, 출교를 걱정하는 모습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앞 못 보는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를 존귀한 영혼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며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겉모습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외모를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외모에 더 많은신경을 쓰고 투자를 합니다.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를 더욱 피폐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볼 줄 아는 사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의 중심을 보며 다가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아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의 아픔과 슬픔을 헤아리며 위로의 손을 펼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은 목사 - 초운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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