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2019. 5. 29. 수요일 : 나그네 답게 살아야 합니다

w.j.lee 2019. 5. 29. 23:35
2019. 5. 29. 수요일

나그네 답게 살아야 합니다


찬  송: 488장 - 이 몸에 소원은 무언가





성  경: 사도행전 7:1~7
(행 7: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행 7: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 7: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 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행 7: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행 7:6)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행 7:7)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요  절 :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나그네' 하면 자그마한 보따리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인생의 보따리를 늘리며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이삿 날 풍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엔 이삿짐이 작은 트럭에 솟단지와 이불, 옷가지 정도였는데, 요즘은 이삿짐 센터의 큰 트력 하나에도 다 싣지 멋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서 발 붙일 만큼의 땅도 유업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5).

가나안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고향이 있던 아브라함을 이끌어 친히 인도하신 땅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께 그 땅을 한 뼘도 얻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이 죄악에 만영(滿盈 : 가득참)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셨다면 그는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그 곳에 동화되어 결코 믿음의 조상으로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훗날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땅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심판하여 정결하게 하신 후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귀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택한 자인 성도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얻을 유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땅을 얻지 못한 이유는 이 땅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저 잠시 나그네로 있다가 가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머무는 곳이나 거기에 속한 것들에 매달리지 않고 늘 본향을 사모합니다.

성경은 돌아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잊어버린 채 살아가기 쉬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오늘도 본향을 향하여 걷는 아름다운 나그네의 삶을 가꾸어 가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시선은 이 땅을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본향인 천국을 향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하나님,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여기며
이 땅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두고
정신없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심시오.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임을 깨닫고,
날마다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현 감독 - 예향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