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2019. 7. 26. 금요일 : 죽음을 준비하는 삶

w.j.lee 2019. 7. 25. 22:46
2019. 7. 26. 금요일

죽음을 준비하는 삶


찬  송: 211장 -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성  경: 요한복음 12:1~8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  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우리나라는 2017년을 기준으로 고령 사회에 들어셨습니다. 오는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우리나라 전 이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기도 했지만, 출산율 저하로 인구 비중이 노인에게도 기울어진 탓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상이 반영되어 노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사람들은 살아온 날을 아름답고 평안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웰다잉'(Well dying)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죽음을 인식하면서 '당하는 죽음'이 아닌 , '맞이하는 죽음'을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는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가룟 유다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며 비판하는데, 예수님은 '나의 장례날을 위해' 그런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행위는 오라비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흔히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단순한 헌신과 봉사를 뛰어넘습니다.

히브리 관습에서 기름은 집에 방문한 손님에게 부었고(눈 7:44~46, 왕이 즉위할 때,(삼상 10:1, 왕하 9:3)와 거룩한 제사 때 부었습니다.(창 28:18) 그리고 장례식 때 시신에도 부었습니다.(요 19:40)

마리아가 예수님의 수난이 임박했을믈 깨닫고 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중에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놀라운 일을 한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다는 돈에 눈이 멀고 탐욕에 젖은 가즐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예수님에 대한 불신과 배척을 암시합니다. 마리아와 유다의 양극단적인 반응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무한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나를 향해 나를 비추는 말씀입니다. 웰다잉 시대, 마리아 처럼 우리도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현재의 삶 속에 팽만해 있는 나의 자아, 탐욕, 죄악을 죽이고 예수님을 향해 다시 태어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내 죽음이 되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드림의 삶을 실천하십시오.

주와 함께 죽는 사람만이 주 안에서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유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마리아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의 주님,
탐욕과 죄악에 물든 모습을 회개합니다.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표현한 마리아처럼
주를 위해 헌신하게 하옵소서.
나의 자아를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삶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명순 목사 - 조암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