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8. 주일
그들은 들으리라
찬 송:
540장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성 경:
사도행전 28:23~28
(행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일렀으되 ㄱ)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요 절 :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행 28: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행 28: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 28:26) 일렀으되 ㄱ)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요 절 :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구약성서에 ‘요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여느 예언자들과 달리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물론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가서 마지못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고 외쳤습니다.
니느웨는 3일을 걸어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큰 성읍인데, 요나는 단 하루만 외쳤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대대적인 회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예언자 요나는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은 들었습니다.
요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로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지만, 아직 미결수였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셋집을 얻었고, 방문자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방문을 받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우호적으로 말씀을 듣는 반면,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귀로 말을 듣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우둔(愚鈍)하면’ 귀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복음을 듣는 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27)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외면한 복음을 이방인은 들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복음(福音)이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들을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들을 마음과 듣는 귀를 열어 주옵소서.
그래서 주의 복음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밝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우둔한 마음에 기름 부어 주셔서
이 구원의 소식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교석 목사 - 덕교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여느 예언자들과 달리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물론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가서 마지못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고 외쳤습니다.
니느웨는 3일을 걸어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큰 성읍인데, 요나는 단 하루만 외쳤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니느웨 사람들이 대대적인 회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예언자 요나는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은 들었습니다.
요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로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지만, 아직 미결수였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셋집을 얻었고, 방문자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방문을 받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우호적으로 말씀을 듣는 반면,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귀로 말을 듣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우둔(愚鈍)하면’ 귀로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복음을 듣는 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27)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외면한 복음을 이방인은 들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는 복음(福音)이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들을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들을 마음과 듣는 귀를 열어 주옵소서.
그래서 주의 복음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밝히 드러나게 하옵소서.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우둔한 마음에 기름 부어 주셔서
이 구원의 소식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교석 목사 - 덕교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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