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5. 화요일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찬 송:
422장 - 거룩하게 하소서
성 경:
디모데후서 2:15~21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ㄱ)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ㄴ)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딤후 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요 절 :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딤후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ㄱ)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ㄴ)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딤후 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요 절 :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준엄하신 심판의 하나님을 떠올릴 것입니다. 한없는 사랑의 하나님과 언제나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두려운 하나님의 이미지가 충돌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안다 한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여정 속에서 다만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주시는 만큼 조금씩 알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파편과도 같은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모두 아는 것 마냥 여기는 것은 교만이며 결국 왜곡된 신앙으로 치닫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왜곡된 신앙의 소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고는 예상했던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이내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나름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에 가두어 놓을수는 없습니다.
"주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이 지식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은 완전히 몰랐지만 그가 분명히 안 것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했던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낳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만 온전히 붙들어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덧입고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시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주님의 사랑 안에 굳건히 머물며 새상의 부조리와 하나님의 신비를 온전히 맞이합시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의 확실한 약속과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연약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의지할 때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진호 목사 - 하늘결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누군가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준엄하신 심판의 하나님을 떠올릴 것입니다. 한없는 사랑의 하나님과 언제나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두려운 하나님의 이미지가 충돌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도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안다 한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여정 속에서 다만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 주시는 만큼 조금씩 알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파편과도 같은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모두 아는 것 마냥 여기는 것은 교만이며 결국 왜곡된 신앙으로 치닫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왜곡된 신앙의 소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고는 예상했던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이내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나름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에 가두어 놓을수는 없습니다.
"주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어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이 지식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은 완전히 몰랐지만 그가 분명히 안 것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했던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낳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만 온전히 붙들어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덧입고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시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주님의 사랑 안에 굳건히 머물며 새상의 부조리와 하나님의 신비를 온전히 맞이합시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주님의 확실한 약속과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연약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의지할 때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진호 목사 - 하늘결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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