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 40 : 눈치보지 않는 신앙

w.j.lee 2021. 4. 3. 06:14

2021년  4월  3일  토요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한복음 19:38)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오후 3시에 운명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에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금요일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시간이 길어봤자 2~3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 어떻게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형수의 시신을 받아줄 무덤이 과연 있을까요? 

현장에 있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난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적 같은 소식이 들립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산헤드린 공회,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 섰던 그 공회의 회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신의 무덤을 쓰라고 재안한 것입니다. 

당시의 상식으로 볼 때, 예수님 무덤을 내어 준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입니다. 

대체 요셉은 어떻게 이런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원래 예수님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도층으로서,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을 억울하게 죽이는 재판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옳은 길로 갈것인가? 

요셉은 결국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예수님을 자신의 무덤에 안치합니다. 

아마도 요셉은 이 일로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빛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2천 년 전 오늘. 예수님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계셨습니다. 

무덤 문은 경비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고, 

생명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무덤은 공호허 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과 세상의 전쟁은 이렇게 세상이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결국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승리이자,

아리마대 요셉처럼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모든 성도의 승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승리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적  용

 - 지금까지 나를 두렵게 하던 세상은 무엇이었습니까?

 

 

기  도

예수님을 더 사랑했기에 

세상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것을 드린 아리마대 요셉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나의 것을 드리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감으로 

영원한 승리를 얻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도서출판 kmc 사순절을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