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 1 : 주저앉기

w.j.lee 2022. 3. 1. 15:46

주저앉기

 

3월 2일(수) 재의 수요일

오늘의 말씀(시편 51:1~17)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요절(要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사순 첫날은 '재의 수요일'이라 합니다.
올리브유에 재를 섞어 이마에 바르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죄인으로서의 낙인(창4:15), 이것이 연약한 인간의 처지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사순 첫날,
우리가 읽는 시편은 범죄한 다윗이 감추었던 자신의 죄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드러났을 때 드렸던 고백입니다.
나단의 지적을 받는 순간 그는 자신이 숨겨 왔던 모습을 선명히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는 위엄있는 왕 일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죄인이었습니다.
자기 죄와 허물이 드러난 이가 진정으로 취할 수 있는 자세는 그저 주저앉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황망하기 그지없고 그자리를 피해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겠지요.

 

그러나 털석주저앉아야 합니다.
직전에 의기양양했던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내려놓고 변명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저앉음은 자신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주저앉은 바닥을 떠난다면 그는 모면할 변명의 꾸러미를 찾느라 바빠지겠지요.
그러니 주저앉아 자신을 좀 더 지켜보아야 합니다.

주저앉아 머무는 그 시간을 통해 시인은 부서진 자신을 보며 “이게 저입니다 주님”이라고 아됩니다.
벌거벗은 영혼, 모든 포장을 걷어버린 가난한 영혼으로 주님 앞에 서는 거지요.
그리고 죄의 무게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황스러움을 토로합니다.
죄를 발견하고 뉘우치는 마음은 있으나 그 스스로는 고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改 뉘우치고 고침)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뉘우칠 수 있을 뿐 고칠 능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윗은 “주님 이게 저입니다” 라는 자기발견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이런 자신을 바꾸실 수 있는 주님께로 마음을 돌립니다.
엎드려 자기를 본 후 우러러 주님께 호소합니다.
“당신만이 저를 바꾸실 수 있고 새 영혼을 지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주저앉은 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갑니다.
여기에 길이 있지 싶습니다. 주저앉은 채 주님을 뵙는 것!

주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죄책감으로 그의 인생을 짓누르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통로로 삼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죄책감으로 짓누르려는것은 거짓된 유혹입니다.
주님은 고백을 기다리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능력을 기대하는 분이 아니지요.
그분이 전능하신데 우리에게 무슨 능력을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자복하는 인생을 찾으셔서 그 영혼에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길 원하십니다.

기독교가 죄를 말하는 것은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허물을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로 삼으며 이 허물을 통해 거룩에로 인도하시려는 역설이지요.
그러니 내어놓기는 허물을 내어놓고 얻어누리기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누리십시오,

기도
주님,
제가 주저앉아 당신을 우러르며 기다립니다.

저를 너무 오래 그냥 놓아 두지 말아주십시오.

부서진 마음을 내어드리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