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 3 : 호오(好惡)를 넘어서

w.j.lee 2022. 3. 3. 04:35

.

호오(好惡)를 넘어서

2022년 3월 4일(금)

오늘의 말씀(사도행전 7:35~42)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요절(要節)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 7:40)

 

 

출애굽과 광야 40년을 이끈 지도자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말씀을 받아 전한 모세였지만

목이 곧은 이스라엘은 거역을 일삼았습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배척하였고 광야의 여정에서도

그의 권면을 듣기보다는 노예살이하던 애굽을 더 그리워하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머물고 있을 때에는

자신들을 이끌 신, 송아지 모양의 우상을 제작하여 제물을 바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출애굽의 여정에서 백성들이 모세를 거역한 것은 저들이

정작 자신들의 여정에서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노예살이의 채찍은 잊고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저 호오(好惡),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려는 것이 그들 선택의 기준입니다.

숙한 인생의 소중한 기준이지요.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려는것은 자기욕망에 충실한 행위일 뿐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자주 우리는 삶과 영혼에 필요한 것을 호오(好惡)의 기준으로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지요.

러니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자 시내산에 머무는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미숙한 신앙은 침묵과 부재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인내와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저 눈을 만족시킬 대리물을 찾기에 바쁩니다.

애굽의 기억을 되살려 송아지 모양의 형상을 만들고는 신으로 경배하며 떠받듭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신을 섬기려 합니다.

러니 자신들이 원치 않는 바를 명하는 신은 거절합니다.

끝내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우상과 거짓 신앙은 아주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호오(好惡)를 넘어서야 합니다.

원치 않고 싫어하는 것이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들의 우상은 과거의 향수이기도 하고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려는 어리석음의 소산이기도 합니다.

황소 형상은 애굽의 신이자 저들도 과거에 오래 보아온 신의 형상입니다.

저들은 어르고 달랠 수 있는 신, 제물을 바쳐 조종할 수 있는 신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맞춰주는 신을 원한 거지요.

 

가나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은

자신을 새롭게하는 여정이며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주님께서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라

난받는 메시아를 보이셔서 제자들을 새로운 신앙으로 이끄시는 것과 같습니다.

광야를 지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믿음을 훈련한 것처럼,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훈련한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사순의 여정에서 깨어 훈련해야겠습니다.

호오(好惡)가 내 삶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시비(是非)도 우리의 신앙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호오와 시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

그 뜻에 순종하는 여정이 되도록 더욱 자주 주님의 뜻을 여쭤보아야 합니다.

 

기도

주님,

이 영적 여정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자 할 때

제가 과거나 익숙한 것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고

비록 알지 못하더라도 순종하는 믿음을 주십시오.

좋고 싫고에 흔들리는 미숙함에 머물지 않고

주님의 뜻이 저를 이끌게 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