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 사순첫째주일 : 성령 안에 익어가다

w.j.lee 2022. 3. 6. 05:18

성령 안에 익어가다

3월 6일(주일) 사순 첫째 주일

말씀(누가복음 4:1-13)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요절(要節)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눅 4:1b-2a)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주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신 주님은 세상으로 나아가신 게 아니라 광야로 물러나셨습니다.

바울 또한 예수를 체험하고 곧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광야로 물러나 수년을 머물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고 왜 광야로 물러나셨을까요?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하게 덧입었다고 해도 인간의 내면과 인격이 온전해진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서 성령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인내가 갖추어진 것도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서 항상 깨어 성령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과 익어가야 할 인생 간에 훈련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성령께 주도권을 이양하는 내면의 침묵과 훈련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또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40일, 성서는 40을 훈련의 시간으로 상정합니다.

출애굽 후 광야의 시간도, 모세의 목자 훈련도, 엘리야의 호렙산을 향한 길도 40으로 채워졌습니다.

40은 나를 덜어 하나님으로 채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지니 영적으로 고양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를 덜어내고 깎고 쳐내는 힘겨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서는 깎고 쳐내는 것을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악마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걸 증명해 보라고 능력을 보여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좀 드러내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취해 보라고도 속삭입니다.

어차피 메시아로 보내졌으니 메시아임을 보여보라 합니다.

유혹은 지극히 부드럽고 필요해 보이며 때로는 신실한 신앙적 외양을 지녔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받은 유혹처럼 보암직도 먹음직도 탐스럽기도 합니다.

러나 예수께서는 말씀을 들어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덧입으셨지만

그것은 당신을 증명하는 데 쓰일 게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만을 새기며 그 안에 머무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겠지요.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졌지만 신앙적으로는 위기를 맞을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거룩하심과 은총을 덧입은 것인데

마치 본래 내 것인 양 그걸 누리거나 사용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충만할 때 넘어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주님처럼 말 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을 의지하고 자기 약함 속에 머무는 이는 겸허함으로 인하여 자기를 부인하지요.

자기가 아무것 도 아님을,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축구 경기를 지켜보면 공을 잡지 않는 이에게 태클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공을 잡고 상대편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이에게는 방해와 태클이 들어옵니다.

골문이 가까울수록 더 많은 벽이 둘러쳐지고 막힙니다.

그리스도인 또한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 할수록 더 많은 훼방과 태클이있습니다.

불평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믿음의 형식만 지닌 이에게 무슨 훼방과 시험이 있겠습니까?

 

기도

주님,

당신께서 주신 은총과 사랑을 마치 제 것인양 여기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저를 사용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게 하시고 도구된 종이 주님의 영광을 차지 하지 않게 깨어있게 해주십시오.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제 영혼에 남게 하시고 삶에 녹아지게 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