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 6 : 님 안에 머무는 중 자비로 녹아지네

w.j.lee 2022. 3. 8. 18:14

님 안에 머무는 중 자비로 녹아지네

2022년 3월 8일(화)

말씀(시편 17편)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요절(要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15)

 

 

 

선을 베풀고 씁쓸한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그에 따른 고통을 겪는다면 수긍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이 세상에서 선을 베풀고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선을 베풀고도 상처받고 고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낙심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시편의 시인 또한 바른길을 걸었다고 여기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온갖 손가락 질과 공격입니다.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그런 처우를 겪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격하는 이들은

그가 아예 사라져주기를 바라듯 그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언어는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합니다.

저들의 뻔뻔함과 오만함에 몸서리를 칩니다.

혹여 잘못한 것이 있나 싶어 그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밤새워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살피고 걸음을 헤아립니다.

그렇게 돌이켜보니 작금의 현실이 더 용납되지 않습니다.

조심스레 걸어온 걸음만큼의 분노가 덮쳐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복수심에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이 억울함과 분노를 자기를 공격하는 이들을 향해 쏟지 않고 하나님과 씨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는 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전부를 주님 앞에 쏟아놓습니다.

그러니 그 기도는 고상하지 않습니다.

상처에서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가 어떻게 예를 갖추겠습니까?

주님 다 아시지 않느냐며 항의할 수밖에요.

 

오 하나님,

저 지금 무지무지 화가 났습니다. 아무개 그놈, 개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걱정이 되어 머리는 빠개질 것 같은 데 저에게 온 기회를 놓쳐버린 건 이번에도 분명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낙심천만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몸과 맘이지만

그런 채로 여기 10분 동안 당신 앞에 앉아 있겠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저도 알아요.

그래도 아무튼 10분 동안 여기 이대로 머물러 있겠습니다.

(해리 윌리엄스, 케임브리지 삼위일체 칼리지 학장, 『세기의 기도」)

 

그분 앞에 머무는 10분!

하나님 안에서 기다리는 중에 분노에 잡힌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그분이 우리를 녹여내십니다.

내가 옳다고 인정받아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 앞에 머무는 동안 분노를 녹여내시고 당신으로 채워주십니다.

시인은 허물이 없어서 당당하게 그분께 나온 것이 아니라

'당 신은 아시지 않습니까?'라는 신뢰를 품고 나왔습니다.

이 모든 억울함과 분노를 어떻게든 풀어주실 것을 믿는 거지요.

그래서 머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깰 때에 주님의 얼굴 뵙는 것! 그것으로 넉넉히 만족합니다.

신앙은 적을 이겨서 쟁취하는 승리가 아니라

주님께 받아들여졌음으로 인하여 누리는 위로입니다.

이로써 새로운 신앙의 경계(境界)로 진입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시비가 그를 휘두르지 못합니다.

이제 주님의 얼굴을 뵌 이는 이 어둠의 땅에서

그 얼굴빛이 주는 기쁨과 만족으로 인하여 믿음의 걸음을 계속합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든 거절당하든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

주님,

혹여 이 삶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노가 일거든

그걸 그대로 당신 앞 에 가져갈 수 있는 인내와 믿음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저의 분노와 억울함이 주님 안에서 녹아지게 하시고

저를 품어주시는 주님을 체험하 게 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