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오늘의 말씀

아픔과 슬픔 중에 꿈꾸는 불가능의 가능성

w.j.lee 2021. 10. 29. 09:41

 

 

아픔과 슬픔 중에 꿈꾸는 불가능의 가능성 

 

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오늘의 말씀

13.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17.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18.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 가고
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 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오늘의 말씀요약

욥은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자신을 숨겨 주시고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모든 고난을 참고 기다릴 테니 자신의 죄와 허물을 봉하시고 싸매 달라고 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산이 무너지고 물이 티끌을 씻어 버리듯,

사람의 희망을 한순간에 끊어 버리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14:13~17)
절망적 상황에서도 회복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욥은 자신을 ‘스올’에 숨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구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다고 합니다(시 139:8; 암 9:2 등).

또한 스올은 되돌아올 수 없는 곳입니다(7:9~10; 10:21 등).

그럼에도 욥은 스올을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로 묘사합니다.

이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욥은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인식합니다.

이처럼 고난은 인간에게 현실을 능가하는 소망을 품게 하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욥은 진노가 그치면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부름’과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15절).


- ‘스올에 감추어 달라’는 요청에서 욥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요?

- 나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곧 나를 ‘구원하실’ 분임을 확신하나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는 하나님 (14:18~22)
하나님 권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산과 바위는 탁월함과 견고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능력 앞에는 무력합니다.

물이 돌을 닳게 하고 땅의 티끌을 쓸어 가듯 하나님은 사람의 희망을 끊으십니다.

희망을 끊는다는 것은 절망적 상태로 만들거나 생명을 끊어 버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 인간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시며, 얼굴빛을 변하게 해 죽음의 세계로 떠나게 하십니다.

죽음은 인간을 현실 세계로부터 단절시키기에 누구든 자손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살’(육체)과 ‘영혼’을 가진 모든 인간은 현실 세계에서 고난이 가득한 삶을 살아갑니다.

욥은 고난의 실존과 죽음 사이에서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 ‘살이 아프고 영혼이 애곡한다’는 표현(22절)에서 육체와 영혼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 육체의 고통은 나의 내면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오늘의 기도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주님이 사람의 희망을 끊어 놓으셨다’고 항변하는 욥의 모습에서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몸부림을 봅니다.

홍수가 티끌을 쓸어버림같이 인간적인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린 자리에서,

참소망 되신 주님을 만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