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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음성 듣기
2022년 3월 22일(화)
말씀(로마서 2:12-16)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요절(要節)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 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 2: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율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분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율법을 지녔다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순종의 모범을 보여야 했던 거지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이 율법을 특권과 자랑으로 삼고는
율법 없는 이방인을 멸시하고 멸망될 이들로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착각을 일깨웁니다.
바울은 율법을지녔거나 율법을 들어서가 아니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준행함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義)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설사 율법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본성과 양심에 따라 율법의 명하는 바를 따른다면 그들 자신이 율법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서만 의로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신실한 신앙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율법 안에 제약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분이 600여 조목에 지나지 않는 율법 조항에 제한받으시겠습니까?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직접 일하시는 분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도구 없이도 우리 마음과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를 일깨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와 직접 관계를 맺으시며 길을 안내하시는 분입니다.
그랬기에 신실한 이들은 언제나 바깥에서 기준을 찾기보다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했습니다.
이를위해 소란한 곳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침묵 가운데 머물고자했습니다.
그런 때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은
주님의 뜻을 준행 하며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선한 도구이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제약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혼을 독려하지는 않고 타인을 판단하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율법은 아주오용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디딤돌 삼지않고 서로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게 하였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인 율법에 매이다가
양심과 우리 본성에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밖의 도구에만 기준을 두면 육체만 따르게 되고 마음과 영혼은 점점 함께하지 못합니다.
안팎이 달라지게 되면 마음의 소리는 흐릿해집니다.
거짓과 이기심은 양심을 가장하기도 하고 양심의 소리를 가리기도 합니다.
양심이 우리를 고발할 때 외면하도록 주의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도 합니다.
호렙산의 엘리야처럼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이며 분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사순의 여정을 우리 양심과 본성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속삭임을 듣는 훈련의 시간으로 삼아 깨어있길 청해야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에는 유혹과 격려가 헝클어져 있어서 더욱 세밀한 분별이 있어야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도 밤새 아버지 뜻안에 거하셨습니다.
기도
주님 제게 많은 은총의 도구를 주셨는데
그것에 빠져서 막상 주님을 잊는 어리 석음에 빠지 않게 하십시오.
제 마음과 양심에 속삭이시고 제 영혼에 일러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제 영혼을 민감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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