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默想, meditation) 20 : 영원을 이미 누리네

w.j.lee 2022. 3. 24.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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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이미 누리네

2022년 3월 24일(목)

말씀(고린도후서 4:16-5:5)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5: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요절(要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가끔씩 찾아가 머물던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낡은 건물, 유명한 강사를 불러 치르는 집회도 없고

그저 조용히 기도하기 위해 온 이들이 머물 작은 방 몇 개와 예배실이 전부였습니다.

목회자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오십여 년을 지켜온 산 중턱 작은 기도원이었습니다.

 

노(老) 원장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을 쓸고, 기도하러 온 이를 위해 밥을 합니다.

이미 두어 시간을 고요히 무릎 꿇은 후에 하는 일상입니다.

대부분의 반찬은 그분 손을 거칩니다.

름 바른 김도 연탄불에 직접 굽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씨름하는 이를 자신의 손으로 먹이려는 어미의 마음입니다.

문객이 그저 얻어먹기가 죄송스러워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칩니다.

기도하고 설교준비하라며 그런 건 당신 일이라 잘라 말씀하십니다.

세 끼를 차리기 위해 쉼없이 움직입니다.

 

저녁 서너 명 모여 기도회를 갖습니다.

젊은 목사에게 설교 하라시곤 그저 귀를 기울이십니다.

11시가 넘어 자리에 누우시면 어디가 불편하신지

한참이나 뒤척이며 끙끙이는 소리가 벽을 타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세 시쯤이면 어김없 이 같은 하루가 이어집니다.

여쭈었습니다. 힘드시지 않으세요?

아드님이 오라시는데, 가서 쉬며 여생을 보내시지요.

이제 껏 수고하셨는데요. 그분이 빙그레 웃으며 마른 등걸 같은 손을 흔들어 보이십니다.

“이 낡디 낡은 걸 뭘 그리 아껴 보전하겠어요. 빨리 써서 닳아 치워야지.

그래야 (하나님께) 갈 것 아니겠어요?”

마치 아무 상관없는 남의 물건인 양 당신의 낡은 육신을 들어 말씀하시던

그 음성이 30여 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육신이라는 장막에 매여 있지만 그 장막에 짓눌리지 않고 성령의 은총으로 덧입으며,

이 죽을 장막, 썩을 몸뚱이가 생명에 삼켜지길 바란다는 바울의 고백이 무엇인지

노 원장님의 말씀으로 선명해졌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바울의 고백은

육신은 점점 낡아가나 영혼은 더욱 맑아져서,

쇠하여가는 몸에 위축되지 않고 도리어 낡은 몸마저 믿음으로 잘 써서 닳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것이었습니다.

 

원장님에겐 생명의 유한함도, 몸을 연약케 하는 세월도 맥을 잃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주님 안에서 영원을 누리고 계셨던 거지요.

 

영원은 과거와 미래와 지금 여기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 이후에 누리는 것이라고 여길 수 없지요.

지금 여기 이 시간을 떠나 영원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며 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영원을 소망하면서도 시간에 쫓기고 그 힘에 짓눌립니다.

영원이란 지금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덧입어 사는 믿음입니다.

이미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생명, 영원으로 약동하고 있는 데

어떻게 낡아가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겠습니까?

 

낡아가는 것이 기쁨이 되고 후패할수록 소망은 굳건해집니다.

점점 땅의 것은 힘을 잃고 하늘의 것만이 분명해지고 가까워집니다.

 

 

기도

생명의 주님,

이 땅에서 낡아가는 것이 두려움이나 무력함이 아니라

우리 주님 의 생명을 누리는 소망으로 점점 더 채워지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낡아가는 만큼 주님을 향한 마음은 더 분명해지고 확신으로 가득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후패(朽敗) : 썩어 문드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