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默想, meditation) 19 : 하나님 나라 찾기

w.j.lee 2022. 3. 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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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찾기

2022년 3월 23일(수)

말씀(누가복음 13:18~21)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요절(要節)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 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눅 13:19)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라며 복음의 핵심을 말씀하시는 건

마치 학생들에게 '이거 시험에 꼭 나는 중요한 것이니 잘 기억해야 한다'라는 핵심체크 같습니다.

듣는 이들도 귀를 쫑긋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엄청난 시작 과는 달리 별 것 아닌 듯한 두 문장으로 그 나라를 일러주십니다.

겨자씨와 누룩과 같답니다. 그러고는 시침을 뚝 떼십니다.

'어떠냐?' 하고 물으시며 반응을 살피시는 것 같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귀를 기울인 것치고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치고는 좀 싱겁고 갸우뚱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든 소재 겨자씨와 누룩은

당시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에게 별로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누룩 같은 것은 부정한 것이기에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조금의 누룩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청소해야 했습니다.

 

겨자씨 또한 아무데서나 막 자라는 풀인지라 눈여겨볼 게 아닙니다.

아무도 겨자씨를 자기 정원에 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원에서 제거할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겨자씨와 누룩을 소재로 삼고는

그것이 자라서 새가 깃들고 밀가루를 온통 부풀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별 것 아닌, 볼품없는 거절당한 것으로 출발합니다.

게다가 그 나라가 이미 성대하게 자라고 거기에 깃드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은 전혀 눈 치채지 못하고 놓치고 있습니다.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콘은 수백 년의 노예살이, 린칭트리의 공포 가운데

흑인들이 여전히 신앙을 유지하고 소망을 잃지 않고

유머를 간직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하고 자문하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의 살해와 차별, 강간과 폭력 등에서

그들이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들을 노예로 부리고, '검둥이' 라며 차별하는 백인교회를 떠나,

흑인들끼리 모여 예배하고 그곳에서 한숨과 아픔이 섞인 신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해방하시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들만의 교회에서 흑인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블루스'와 '영가를 부르며 공동체를 형성했고,

총성과 화형의 공포에도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하늘의 꿈을 꾸는 사람들'로 살아남았다고 기록합니다.

 

세상은 큰 업적과 성취로 역사가 진보 발전한다고 여기겠지

하나님 나라는 정반대로 전혀 눈에 띄지 않은 채 어느새 자라고 있습니다.

별일 아닌 것으로 채워져 다들 스쳐 지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은밀히 이 일을 계속하십니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 출근길에 마주하는 깨끗해져 있는 길과 버스, 지하철,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유지되는 일상들처럼

하나님과 그 나라의 백성들로 인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양

하나님 나라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아닌 지...

 

지금도 하나님 나라가 크게 자라 있어 거기에 깃들었으면서 그런 줄도 모른 채,

하나님의 비밀한 은총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요?

 

다른 것에 눈돌리고 있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기도

주님,

제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느라

이미 드러난 당신 나라를 놓치거나

무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두렵습니다.

너무 일상 같거나 유치해서

당신의 은총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시고

평범에 담긴 하나님의 신비에 눈을 뜨게 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