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 묵상 31 : 알아듣지 못함은

w.j.lee 2022. 4. 6. 05:23

.

.

알아듣지 못함은

2022년 4월 6일(수)

말씀(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요절(要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 리라 (눅 18:31)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것을 거듭 예고하고 그럼에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의 수난 예고는 세 번째 예고인데 여전히 제자들은 아무것도 알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 이유가 말씀의 뜻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왜 그 말씀의 뜻은 감추어져 있을까요?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걸까요?

 

신앙생활 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도록 믿고 맡기는 성도는 

조금씩 말씀이 그를 이루어 가는 것을 체험합니다. 

 

사람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 감히 거룩 하고 영원한 말씀을 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육신으로 이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가능하다면 오직 거룩한 말씀이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를 이루어가시는 것뿐입니다. 

 

예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된 말씀이 당신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리라고 하시는 것은 

예언된 말씀이 친히 당신을 이끌고 계심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씀에 당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우리를 오롯이 내맡기는 것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말씀을 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일부분만을 택하곤 합니다. 

말씀이 우리 삶을 제련하고자 불과 물로 이끌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에고(EGO, 自我)의 고약한 습성이기도 하지요. 

 

본문 바로 앞에서 주님을 찾아온 젊은 부자가 어릴 적 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그 말씀 앞에서는 고개를 떨군 것과 같습니다. 

귀로는 들었지만 몸으로 이루기는 힘겨운 것이라 스스로 결론지은 것이겠지요. 

 

예언서와 예수께서 거듭 메시아의 고난을 말했지만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승리와 영광의 메시아였지요.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일부러 외면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끝내 성령에 사로잡히고 나서야 고난의 의미를 온전히 알아채고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귀로 듣는다고 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참된 믿음은 나를 편안하게 하는 말씀을 택하던 습(習)에서 벗어나

말씀이 나를 당황케 하더라도 그 말씀이 나를 이끄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일어나는 불편함을 거절하고 말씀 앞에 “예” 하는 것, 이것이 변형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주인이신 분이 우리의 예를 기뻐하시면서 손수 우리를 이끄시지 않겠습니까?

 

이 여정 동안 혹여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부지불식간에 놓치거나 외면한 것은 없나 살펴야겠습니다.

 

 

기도
주님,

이 여정 동안 제게 편한 말만을 선택하여 듣는 고약한 구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말씀을 내가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저를 택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때로 그 말씀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으로 “예”라고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