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 묵상 33 : 사람이 되신 것은

w.j.lee 2022. 4. 8.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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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신 것은

2022년 4월 8일(금)

말씀(히브리서 2:10~18)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요절(要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 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는 강한 설득과 확신에 의해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

때로는 우리보다 더 연약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위로를 나누어주고 같이 아파하는 이들을 통해 힘을 얻으며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때로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는 역설을 종종 마주하지요.

우리는 연약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함께있는 것만으로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지닙니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같은 처지에 머물며

우리 연약함을 친히 겪어 고난 가운데 우리 구주가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신적 위용 과 놀라움으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지상의 길을 걸어 하나님의 거룩에 이르셔서는

우리의 삶이 거룩으로 나아가는 통로임을 밝히셨습니다. 

주어진 삶을 통해 구 원에 이르게 하신 거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있습니다.

숨붙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죽음과 가급적 피하려고 하는 고난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직접 적인 길이며 거룩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을 성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완전은 윤리적인 완벽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닮음, 거룩해짐의 뜻으로 하나님께만 쓰이 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겪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른 거지요. 

그랬기에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 안에 채우길 원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자신이 점점 더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은총을 덧입고 있음을 깨달은 거지요.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난제들이 극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삶의 문제가 많이들 해결되었다고 외치지만

그 삶의 끝에 잇닿아 있는 죽음 또한 분명한 실재인데 다들 직면하길 꺼립니다.

 

무화(無化), 의미없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

그토록 추구하고 붙잡았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빠져나갈까 두려운 거지요. 

그러니 뻔한 사실을 마치 없는 양 외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이 의미없이 사라지게 하는 악마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통로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죽음이 가진 힘을 벗겨냈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에게 죽음이 곧 삶을 뛰어넘어 영원에 이르는 길로 주어졌습니다.

 

힘을 잃은 죽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박해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순교를 영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하루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어 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이 육신을 하루빨리 벗어버리는게 더 좋다고 했습니다.

다만 성도들을 돌보기 위해 남겨진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라고 고백합니다(빌1:23-24). 

이미 죽음을 넘어섰는데 조금 빠르고 느린게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이 사순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이 우리를 두려움에 빠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약함을 먼저 겪으신 분의 위로와 은총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그분이 사람이 되셨고 지금도 우리를 격려하고 함께하고 계십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겪는 이 인생을 당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혹여 만나는 어려움과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기보다

주님이 친히 우리를 거룩에로 이끌고 계심을 믿고

먼저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