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다림
여러 성경 구절을 살펴보았으니 지금쯤 기다림이 성경적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기다림이 인간 삶에서 뗄 수 없는 일부일 뿐 아니라 제자의 길에 중요한 부분임을 알아보기 시작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기다림에 관해 말할 때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 할까?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는 한 단어로 표현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성경은 여러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를 사용한다.
구약의 기다림
구약에서 기다림에 대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카 바'(qavah)이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47번 사용되며, 그 의미는 "큰 기대감으로 바라보다"이다.
1장에서 나는 출발점으로서 이 기본적인 정의를 제시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더 있다.
'카바'는 행동과 목적으로 가득한 단어다.
이것은 뭔가 혹은 누군가의 도착을 고대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또한 긴장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한 히브리어 사전은 이 단어의 어원을 실을 꼬거나 잡아 늘이는 것과 연결시킨다.
'그렇다면 '카바'는 삶의 긴장 속에서 소망을 품고 바라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편과 이사야 서는 이 단어를 사용한, 담대하고 믿음 충만한 구절로 가 득하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 27:13-14).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시 40:1).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기다리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사 33:2).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이 구절들은 성경적 기다림이 적극적이고 의도적이라 는 점을 보여 준다.
삶이 힘들고 복잡해질 때 특히 기다림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다림을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내게 기다림은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내게 기다림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것, 그냥 당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바' 덕분에 기다림을 목적으로 충만 한 것, 심지어 생산적인 것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기다림을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긴장이 가득한 삶 속의 공백 들을 채워야 한다.
두 번째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야할'(yahal)이다.
이단 어는 구약에서 42번 사용되며, 그 의미는 확신이나 소망과 더 관련이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의 번역자들은 이 히브리어 단어를 '소망'을 의 미하는 헬라어 단어로 자주 번역했다.
여호와를 바라는(기다리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 31:24).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기다렸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시 38:15).
성경에서 '기다림'(wait)과 '바람'(hope)은 서로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이다.
나의 기다림 속에는 대개 소망이 별로 없다.
나의 전형적인 반응은 기껏해야 짜증이고, 심하면 분노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기다림'과 '바람' 사이의 성경적 연관성을 이해하면 우리의 삶에 관한 거짓에서 눈을 떼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바라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경적 기다림은 지체의 기간을 하나님께 소망을 둘 기회로 보는 것이다.
마지막 단어는 '하카'(hakah)다.
이 단어는 다른 히브리어 단어들에 비해 영적 인내와 더 연관 있다.
주로 이 단어는 특히 고통스러운 환경이나 난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기다림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 33:20).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사 8:17).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사 64:4).
기다림은 영적 인내의 자세다.
불확실성은 대개 고통이 나 고난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무엇 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장에서 탐구할 것이다.
여기서는 지체되어 힘든 시기를 맞으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의 반응이어야 함을 마음에 새기자.
종합해 보면, 성경적 기다림은 적극적이고 의도적이다.
삶이 긴장으로 가득할 때 특히 이런 기다림이 필요하다.
성경적 기다림은 소망 및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시편 130편 5절이 좋은 예다.
시편 기자는 5절에서 같은 히브리어 단어 (카바, gavah)를 세 번 사용하지만, 역본들은 다른 단어들(기다리다(wait), 바라다(hope))을 적절히 사용한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시 130:5).
이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기다림과 소망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하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단순히 소망으로 기다리거나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기다리는 것은 곧 소망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곧 믿음을 품는 것이다.
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앤드류 머리는 그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기다릴 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 기다림 속 에서 복을 받는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는 기다림이 헛되 지 않다는 조용한 확신, 하나님이 듣고 도우실 것이라고 믿는 용기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곧 그분이 도우실 것이라고 믿 는 것이다.
신약의 기다림
기다림의 의미는 신약에서도 비슷하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신약에서 기다림 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의미가 있다.
받는 것과 지켜보는 것이다.
둘 다 특정한 종류의 적극적인 행위를 함축하고 있다.
받는 것 혹은 받아들이는 것(데코마이, dechomai)은 신약에 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기다림의 방식이다.
이 기다림은 누군가에게 받기 위한 기다림이다.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뭔가를 받거나 누군가를 맞아들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는 받기 위해 손을 편 자세이다.
하나님께 받을 영적 기회다.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절이 많지만 두 구절만 살펴 보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 1:21).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 5:5).
보다시피 기다림은 고대하는 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
유다서 1장 21절에서 그 대상은 긍휼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그 대상은 의의 소망이다.
이 구절들을 통해 보면 기다림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다.
최소한, 기다림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과 연결시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신약에서 기다림에 대해 사용되는 다른 단어인 '프로스 도카오'(prosdokao)는 지켜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수동적인 단어가 아니다. 뭔가를 찾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지평선을 자세히 살펴보는 파수꾼을 떠올리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단어에는 기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 이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1-13).
베드로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래에 관심을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그는 심판의 날("하나님의 날),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킨다.
이는 영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라는 뜻이다.
이 배경에서 기다림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우리는 성경적 기다림에 관한 분명한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성경적 기다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다림과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의 정의와 가정은 다르다.
실제로 영어 사전에서는 '기다림'을 "멈춤이나 막간, 지체"로 정의한다.
어떤 정의들은 성경의 개념과 더 비슷하지만(예를 들어 "기대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다른 정의들은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과 비슷하다(예를 들어 "일시적인 무활동 상태에 머무는 것"
성경적 개념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다림 사이의 차이는 내가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이전 장들에서 배웠듯이 공백의 순간들을 낭비 할 필요가 없다.
성경적 시각을 품으면 그런 순간을 영적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다림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기다림에 사려 깊게 접근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그날 테라스에서 내 아내가 한 것이다.
아내는 내가 알고 있는 진리를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영적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
나아가 아내는 내 관심과 사고의 방향을 바꿔 주었다.
나는 초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더니 도움이 되었다.
내 관점을 조정한 적은 그때 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첫 단계는 기다림에 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애즈베리신학교(Asbury Seminary)의 전 총장 맥시 더남(Maxie Dunnam)은 이 관점을 보여 주는 한 동료 목회자의 간증을 인용했다.
바로 지금 그 결정을 내리는 중에 있는데 어떻게 결정 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혼란스럽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분을 더 의지하게 된다.
성령님과 연결된 것을 느낀다.
답은 모르지만 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다는 것은 안다.
지금 내가 그 분께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지켜보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 성경적 기다림의 의미다.
출처 :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마크 브로갑 지음, 두란노 펴냄)
'쉼터 >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말씀을 붙들며 기다립니다 (0) | 2024.11.13 |
---|---|
3-1. 사려 깊게 기다리기 (0) | 2024.11.13 |
3-3. 성경적 기다림을 위한 전략 (0) | 2024.11.13 |
에필로그 : 인생의 공백들, 하나님으로 채우다 (2) | 2024.11.05 |
인생의 공백기에 붙들 하나님의 말씀들 (0) | 2024.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