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크리스천 경영인과 직장인

[E-21] 고속도로 이론

w.j.lee 2025. 2. 27. 08:50

 

고속도로 이론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경부고속도로를 예로 들면, 처음 입사했을 때가 서울이고, 직장생활을 통해 본인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지는 부산이라고 해보자.

서울에서 출발한 나는 시작부터 막히는 길이 답답하고 지루하다.

게다가 옆에는 뻥 뚫린 버스전용차로가 보이니 나 도 저기로 달리고 싶다는 바람도 잠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참고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빠른 도로를 수월하게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여러 변수들이 나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간다.

 

첫째는 '내 앞에 조금 느리게 가는 차를 만났을 때'이다.

내 옆차선들은 잘 달리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차가 유독 천천히 가는 바람에(실제로는 규정속도를 준수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빨리 추월해서 앞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마치 내 직속선배나 팀장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드는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다른 부서의 팀장이나 선배들은 능력이 좋아서 그밑에 있는 후배들이 덩달아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유독 나는 선배를 잘못 만나서 성장의 기회가 제한된다고 느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그런 차들을 추월하며 어떻게 생각했는지 떠올려 보자. 

"저렇게 천천히 가서 통행 방해나 하고..."라고 생각하며 잠깐의 미움과 무시의 마음이 있지 않았는가.

 

둘째도 비슷하다.

나는 어떻게든 부산에 빨리 가고 싶어서 추월차로인 1차로만 계속 달리고 있는데, 앞에 보니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했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는데, 이상하게도 1차로는 움직임이 거의 없고 옆에 2차로와 3차로는 어느 정도 속도가 나는 것이다.

이럴 때는 1차로에 사고가 난 건가', '왜 1차로가 더 느리지 이해가 안 되네'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빠른 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막혔을 때 느껴지는 불안과 답답함, 짜증들이 회사에서 경험하는 흔히 '잘나가는 길'의 이유 없는 막힘과도 비슷하다. 

이때 보통 취하는 행동은 빨리 2차로, 3차로로 넘어가서 다시 속도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특히 막히는 길에서 차선 변경을 하다 보면 그 뒤에 오는 차들의 속도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 전체적인 막힘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본인은 그 뒤에 오는 차들의 막힘 따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나의 답답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셋째, 내 앞에 갑자기 끼어든 차량이다.

나는 문제없이 잘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옆차선에서 얼마 공간도 없는 내 앞으로 급히 끼어드는 상황이 생겼을 때, 순간 분노가 올라 오고 상향등이나 경적을 울리며 감정을 표현한다.

회사에서도 나는 멀쩡히 성실하게 일을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날 경력직이라고 해서 나보다 경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입사를 하고, 나보다 높은 연봉에, 다음 승진 기회도 먼저 차지하게 되면 그 때의 마음은 어떠한가.

고속도로에서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그 사람을 비판할 만한 거리를 찾아내고, 기존에 가까웠던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뒷담화를 나누지는 않는가.

 

넷째, 차의 성능을 부러워한다.

옆에 빠르게 달리는 좋은 차들을 보며 내 차의 성능 한계를 탓하고 아쉬워한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좋은 차를 타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성실히 일해도 이 정도 수준의 차밖에 타지 못하는데,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고 운이 좋아서 저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달리니 이건 애초부터 경쟁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마음 깊숙히 자라기 시작한다.

직장 내에서도 그렇다.

서로 비슷한 연봉, 경력을 갖고 있어도 누구는 집안에 돈이 많아 집 걱정, 자녀교육 걱정같은 건 별로 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과 성장, 성취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한 시기심과 질투가 생긴다.

그리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워진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부러워했던 사람들의 실패나 좌절을 옆에서 보면 은근한 통쾌함이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지막 다섯째, 중요한건 결국 모두 부산에 간다는 것이다.

회사생활은 그런 것이다.

처음에 개인이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비슷한데, 다만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지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긴 운전을 빨리 마치고 부산에 도착해서 편안하게 놀고 먹고 쉬고 싶으니, 지금 가장 빠른 길을 택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없이 이기적인 주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가더라도 결국 대부분 부산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먼저 도착한 사람은 늦게 도착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할까.

필자의 경험으로 봤을 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직 대전밖에 오지 못했는데 먼저 부산에 도착해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수 있겠지만,

그 부산에서 편하게 놀고 먹고 쉬는 것의 즐거움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사람은 이제 다시 부산에 만족하지 않고 배를 타고 일본에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빠르게 가나, 느리게 가나 직장생활의 끝은 대부분 비슷하다.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고속도로를 타면, 전체 도로 흐름을 방해하지 말고 안전하고 여유 있게 운전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있는 차로가 조금 느리다고 해도 잠시 기다려주고, 만약 옆 차로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이 되면 그제야 추월해서 가보자. 

그리고 속도를 조금 줄이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풍경도 보고, 같이 탄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도 나누고, 

혹시나 도로에 문제가 생겼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그 때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운전해 가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만일 빠른 고속도로의 속도나 환경이 부담되고 어지럽다면 국도로 빠져서 천천히 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부산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내려가는 길, 그 시간과 과정을 충분히 누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무엇을 타고 가는지 보다 누구와 어떻게 갔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릴 목자들이 이삭의 목 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 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26장 19~22절)


출처 : 크리스천 경영인과 직장인(지은이 : 조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