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의 복음 이야기 1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받은 충격 중 하나는 미국 같은 선진 사회에도 집 없이 떠도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조금만 생겨도 모두 술과 도박, 마약에 써버리기 때문이었습니 다.
왜 그럴까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절망이 익숙한 삶의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이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절망의 자리를 거부하는 본질적인 치유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에게 정말 필 요한 것은 지금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의식, 곧 현상 유지를 거부하는 몸짓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익숙한 절망을 거부하는 선언에서 시작됩니다.
"나 정말 낫고 싶어요! 나 정말 구원받고 싶어요! 나 정말 변화되고 싶어요!"
이런 의식의 깨어남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속적 해법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해법을 포기하는 순간 그분만의 해법, 치유, 구원이 시작됩니다.
진정 예수님을 통한 치유를 갈망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해법부터 거부해야 합니다.
먼저 성공의 못에 들어가고자 새치기 하는 습관,
인맥과 권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제치고 첫자리에 들어서는 습관,
돈으로 반칙하고 성공을 사려는 습관 등
모든 익숙한 해법을 포기할 때 비로소 참소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심오한 이론이 아닌 단순한 순종이다.
- 브루스 윌킨슨
한절 묵상(요한복음 5장 17절)
죄는 이 세상에 비참한 질고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소망 없는 미신, 이길 수 없는 경쟁, 무정함, 가혹한 율법주의 등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비참한 현실을 뚫고 오셔서 은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씀은 죄와 사망의 비참함에 놓인 죄인에게 큰 소망이 됩니다.
예수님의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입니다.
비참한 인생을 건지시는 주님의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두란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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