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달밤
달은 지구로부터 떨어진 평균거리가 38만 킬로미터 정도, 지구를 약간 타원으로 공전한다.
보름달은 반달보다 면적은 2배이지만, 밝기는 10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달은 난반사를 하지만, 보름달은 받는 빛을 온전히 다 반사하기 때문이란다.
타원으로 지구를 돌다 보니 일 년에 열두 번 뜨는 보름달 중에 지구와 가장 가까운 궤도에서의 보름달일 때가 가장 크고 밝게 보이며 이를 슈퍼문이라 부르고 있다.
2018년에는 1월1일 슈퍼문이 떴고, 그달 31일 또 한 번의 슈퍼문이 떠 35년 만에 찾아온 슈퍼블루문을 만났었다.
2019년 에는 2월 20일(음력 정월대보름)에 슈퍼문이 뜬다.
슈퍼문일 때는 궤도가 가장 멀리 있는 때의 보름달보다 수천 킬로미터나 가까워 14%정도 더 크게 보 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추석달이 더 크고 밝게 보이는 것은, 달과의 거리보다는 가을 하늘의 공기가 맑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32년간의 추석 당일에 흐리거나 비가 온 15일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었던 날은 절반가량인 17일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단다.
당연히 보름달은 지구가 태양과 달의 사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날에 뜨는 것이라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즉시 보름달이 동쪽에서 떠오르게 된다.
좌측 그림은 달이 차서 기우는 주기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름 달에서 다시 보름달이 되는 동안의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은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달의 모습을 관찰하지 않으면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날짜에 따른 달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렵다.
필자의 경우 중앙 보름달의 오른쪽 에 'D'모양의 달을 '10 D'라고 정하여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저런 'D'자 모양에 가까우면 10일쯤으로 하고 나머진 그에 감안하여 생각하다 보니 달의 모양만 봐도 오늘이 음력 며칠인지 대강은 알 수가 있다.
혜원의 그림 중에 '월야밀회'라는 이 그림은 남녀 간의 만남에 달을 그려 넣음으로써 무엇인지 모를 남녀관계의 미묘한 감성이 드러 나도록 그려내고 있다.
아무래도 사통하는 것 같은 두 남녀와 이들을 몰래 숨어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이 달과 함께 어우러진 그림이다.
달은 오른쪽이 약간 기울기 시작한 모양으로 보아, 아마도 음력 16~17일쯤 되어 보인다.
달빛 고요한 한밤중에 후미진 담장 밑에서 비밀스럽게 정을 나누는 한 쌍의 남녀가 노상에서 체면도 없이 여인에게 허겁지겁하는 것을 보면, 필시 잠깐의 시간밖에는 만날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버린 옛 정인情人을 못 잊어 줄이 닿을 만한 여인에게 사정하여 겨우 불러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아마도 바로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듯하다.
남자의 차림새는 전립氈笠을 쓰고, 전복戰服에 지휘봉 비슷한 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관청의 장교인 듯싶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해 준 사람인 듯 그들의 만남을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여인은 차림새가 여염의 여인은 아닌 것 같아 주인공인 여자의 전력前歷도 대강은 짐작이 간다.
또 다른 그림 '야금모행'을 보면 뭔가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한밤중에, 금지된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을 그려놓은 것 같다.
이지러진 달을 보니 음력 27일 쯤 그렸을까?
달이 완전히 이지러진 겨울밤에 양반과 커다란 가체를 한 기생의 성매매를 빨간 옷을 입은 별감이 주선해 준 모양 이다.
당시 기생들의 기둥서방 역할을 하던 이들이었기에 쉽게 연결을 해 주었을 것이다.
다음 그림 '월하정인'에서는 어스름한 달빛 아래서 함께 가기를 원하는, 양반의 차림새를 한,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 남자가 초롱불을 들고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자는 쓰개치마를 둘러 쓰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선뜻 따라가지 않으려는 듯 얼굴을 외면하고 얼핏 빼는 듯 보이지만, 발은 이미 앞을 향하여 돌아서 있다.
숨길 수 없는 이 여인의 마음인지.............
왼쪽 담에는 "月夜三更兩人心事兩人知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 라고 쓰여 있다.
초승달이 희한하게 엎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밤중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림 속 달은 초승달도 아니고 일반적 달의 공전 주기로는 저런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그 림의 달 모양을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이태형교수가 분석하였는데, 천문학적으로 달의 모양과 위치 등을 보았을 때, 1793년 8월21일 밤 자정쯤에 그린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교수는 그림 속에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하고 있다는 것에서 착안을 하여 날짜와 시간을 추정을 했는데, 이런 모습은 맨 위 첫 번째 사진에서 보듯이 한 달 주기로 달이 차고 이우는 과정에서는 결코볼 수 없는 현상으로,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부분월식이 있을 때만 저런 달 모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월식에는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과 일부만 잠식되 는 부분월식이 있는데, 신윤복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사이에 있었던, 서울에서 관측 가능한 부분월식에 대한 기록을 조사해본 결과 1784년 8월30일(정조 9년, 신윤복 26세)과, 1793년 8월21일(정조 18년, 신윤복 35세) 두 차례의 부분월식이 확인됐단다.
그러나 1784년의 경우 8월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지역에 3일 내내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설령 월식이 나타났어도 관찰할 수 없었다는 반면, 1793년 8월21일(음력 7월15일)에는 오후에 비가 그쳐 월식 관측이 가능했단다.
이는 승정원일기에도 '7월 병오(丙午.15)일 밤 이경에서 사경까지 월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8월이면 계절적으로 한여름인데, 월식이 일어나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며, 보름달은 자시 무렵에 가장 하늘 높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의 달이 겨우 처마 근처에 걸려 있다는 것은, 달의 남중고도가 낮은 여름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또 그림 속 글을 읽어보면, 시간대가 夜三更으로 적혀 있는데 이것은 밤 12시 전후의 자시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교수의 추정에 동의할 수 있게 한다.
이 같은 추정을 바탕으로 신윤복은 사실과 무관한 상상의 달을 그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월하정인의 위로 볼록한 달은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것인 만큼, 임의로 그런 달을 그렸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그림 '정변야화'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물가에서 나누는 밤의 대화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보이는 것처럼 우물가에는 두 여인이 마주보며 수다를 떨고 있고, 그 모습을 어느 사내가 훔쳐보고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앞의 그림 '야금모행'에서 안내하는 아이가 그렇듯이, 이 그림에서도 멀리 있는 남자나 가까이 있는 여자의 크기가 제멋대로다.
이 그림이 그려진 계절은 이태형교수가 했던 것처럼 복잡하게 분석하지 않더라도 어느 봄밤의 보름달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림의 나무에 붉은색으로 꽃잎이 칠해져 있으니 분명 꽃피는 봄일 것이다.
출처 : 잡설산책 (김연태 지음, 글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