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나사렛 예수

제자들은 예수가 신이라고 믿었을까요?

w.j.lee 2015. 12. 12. 13:43


제자들은 예수가 신이라고 믿었을까요?


나사렛의 예수는 생애 중 30년을 갈릴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목수로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30년을 보낸 후의 3년 동안은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발언을 했으며 이 말은 결국 우리 세상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또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이루었으며, 폭풍을 잠재우고 병을 고쳤으며 보지 못하는 이를 보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려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다른 종교 지도자들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예수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거짓이라면 복음의 메시지들은 모두 신뢰성을 잃게 됩니다. 이 메시지는 예수가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그들과 영원히 살기 원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신이 아니라면 우리는 속은 셈입니다.

일부 종교에서는 예수가 피조물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다빈치 코드”와 같은 소설들은 예수나 제자들의 가르침에는 예수가 신이라는 내용이 없었다는 주장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신성함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기독교가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신이라고 주장하게 만들었던 2,000여년 전의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는 신이라고 주장했을까요?” 기사에서 우리는 예수가 실제로 신이라는 주장을 했음을 나타내는 신약의 증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말을 듣고 그의 기적을 본 증인들은 그가 아버지인 신과 모든 면에서 동등하다는 점을 받아들였을까요? 아니면 예수가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이거나, 모세와 같은 위대한 예언자라고 생각했을까요?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려면 먼저 예수를 보았으며,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제자들의 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증인들

예수는 매우 일반적인 사람들을 자신의 추종자로 선택했습니다. 이들과 3년을 함께 하면서 자신에 대해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진실을 설명했습니다. 이 3년 동안 예수는 수많은 기적을 행했으며 대담한 주장을 펼치고 온전한 선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후 이 제자들은 예수의 말과 행동 중 많은 부분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신약의 내용은 매우 신뢰성이 높으며 다른 고대 역사 문서보다 진위성이 매우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자들은 신약에서 제자들의 예수 관련 이야기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객관적인 내용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제자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기록했습니다. 역사학자 윌 듀런드(Will Durant)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심으로 선택하는 유형의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이들입니다. 복음서는 이들의 성격에 대해 현실적으로 차별화했으며 이들의 잘못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심오한 말을 듣고 장님이 눈을 뜨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모습을 본 제자들은 메시아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나타내는 예언을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이사야 9:6, 미가 5:2).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은 무기력하게 패배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었을 수도 있다는 제자들의 생각은 십자가의 모습을 보면서 사라졌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3일 후,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매달려있던 바로 그 사람은 추종자들 앞에 기적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부활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시 일어난 예수를 보고, 몸을 만져 보았으며 함께 식제자 하고, 이 땅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광스러운 자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 가장 가까운 인물 중 하나이자 예수에 대한 증인인 시몬 베드로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똑히 보았다. 하나님 아버지의 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을…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목소리를.”(베드로후서 1: 16, 17)

하지만 제자들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었음을 의미할까요? 신약 학자 맥닐(A.H. McNeile)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가 분명한 실패와 수치 속에 목숨을 잃자마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교인들이 아닌 위대한 기독교인 모두는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을 기록한 제자들은 예수가 정말로 하나님이라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피조물로 생각했을까요?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면, 전 우주의 창지사인 그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더 낮은 단계의 신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예수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이들은 제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이 만든 최고의 피조물이며, 하나님만이 영원한 신이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예수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3가지 질문을 통해 이들의 말을 검증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기도했을까요?
  2. 제자들은 예수가 창세기에 언급된 창조주라고 가르쳤을까요?
  3. 제자들은 예수를 우주 최고의 존재로 경배했을까요?

주 예수

예수가 승천한 후 제자들은 예수에 대해 “주(Lord)”라고 언급하여 유대인들과 로마인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경배하고 기도까지 하는 등 생각할 수 없었던 행동을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사도행전 7:59).

다른 신도들도 곧 스데반과 뜻을 함께 하여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예수의 복음을 가르치고 주창했습니다.(사도행전 5:42) 대부분 순교한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교부들에게 전파하고, 교부들은 그 메시지를 다음 세대로 전했습니다.

제자 요한의 제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예수의 재림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시간 위에 존재하며, 시간을 갖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를 찾으라.” 폴리캅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는 “예수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입니다”라고 적었으며, 에베소인들에게는 ” … 하나님께서 영생을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신 것”이라고 했습니다.(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이그나티우스의 제자 서간 4:13)

서기 96년, 로마의 클레멘트 역시 예수의 신성함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이그나티우스의 두 번째 제자 서간 1:1)

역시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은 로마 지방 총독 앞에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광분한 군중들이 그를 죽여야 한다고 고함을 지르는 와중에 로마 재판관은 로마 황제(가이사)가 주라고 주장하라는 요구를 그에게 했습니다. 하지만 폴리캅은 예수를 그의 주님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답하며 고통을 참았습니다.

“86년 동안 예수를 섬겼으며, 그는 제게 잘못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감히 저를 구원하신 왕의 신성을 모독하겠습니까?”

초기 교회가 성장하면서 영지주의자들과 이단자들은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보다 열등한 피조물이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리비아의 유명한 전도사인 아리우스(Arius)가 여러 지도자들에게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설득하면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서기 325년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가 창조주인지 또는 단순한 피조물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니케아 공회에 모였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오랫동안 기독교에서 지켜 온 확신과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신약의 가르침을 압도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창조주

창세기에 언급된 하나님은 작은 원자에서 수십억 개의 은하수가 있는 거대한 우주에 이르는 만물의 창조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천사나 다른 존재가 창조주라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이단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야훼)이 창조주라고 확실히 말합니다.

“이는 주님, 창조주,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시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45:11, 12, 13)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를 창조주의 일부로 보았을까요? 아니면 창조주 자신으로 생각했을까요?

요한의 증언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 예수의 제자들은 그 별들을 만든 창조주가 바로 앞에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부활한 후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지구를 떠나기 전에 자신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예수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복음을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1, 3-4)

오늘날에서야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에서 창조되었음을 믿게 되었지만 누가 창조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요한은 창조 이전에 “우주가 이미 존재”했으며, “하나님과 함께”였다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는 말씀은 무엇 또는 누구를 의미할까요? 요한의 다음 말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인인 요한은 유일신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과 말씀이라는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지어냈다고 가르치는 일부 사람들은 “말씀”이 그저 신을 가리킬 뿐이며, 하나님이 아니라는 식으로 요한의 메시지를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약 학자인 F. F. 브루스(Bruce)는 “a god”이라는 문구를 해석하려다 보면 서술문에서 부정관사가 명사에 붙지 않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엄청난 오역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이렇게 말합니다.

  1. “말씀”은 창조 이전에 존재했습니다.
  2.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3. “말씀”은 하나님입니다.

지금까지 요한은 우리에게 말씀이 영원하며 모든 것을 창조했고,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어떤 능력이거나 사람인지는 14절에서 밝혀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요한은 분명히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서한에서 이를 더욱 확실히 밝힙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1서 1:1)

요한은 “그가 만들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가 없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수도 피조물이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말에 따르면 말씀(예수)는 하나님입니다.

바울의 증언

요한과 달리 제자 바울(원래 사울)은 환상을 통해 예수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 기독교의 적이자 교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수년 후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에 대해 밝힙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로새서 1:15-17)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여러 가지의 중요한 점을 밝힙니다.

  1.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과 동일한 모습이었습니다.
  2. 예수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였습니다.
  3. 예수는 만물을 창조하였습니다.
  4. 예수는 창조의 이유입니다.
  5. 예수는 만물모다 먼저 나셨습니다.
  6. 예수는 만물을 함께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브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그 안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격이 완벽하게 구현되었음을 말하며, 그의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보이는 모습으로 되었다는 말은 예수 자신이 빌립에게 한 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요한복음 14:9).

15절의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Prototokos”는 단순한 시간적인 개념이 아닌, “최고”의 의미를 갖습니다. 브루스의 말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가 태초 이전에 존재했으며 창조 안의 우주의 활동을 가리키고, 예수의 우선순위 뿐 아니라 최고의 지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분명히 만들어 주는 것은 우주의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16절의 내용입니다.

17절에서 우리는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모든 원자, DNA, 그리고 수십억 개의 은하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통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존재이며, 모든 것이 창조된 이유이고, 모든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의 증언

신약 중 히브리서에도 예수가 만물의 창조주임이 드러납니다. 첫 구절을 보면 바울이 골로새인들에게 한 말이 나타나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브리서 1:1-3)

요한과 바울의 말처럼 히브리서를 쓴 이는 예수가 인간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모든 세계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가 만물을 보전하고 있는 이라고 합니다.

3절에서는 예수에 대해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쓰인 그리스어 단어는 “그 아들은 광채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의미입니다.”[14] 이 말은 예수가 영원한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며, 제자들이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었다고 믿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가 선지자들보다 우위에 있었을 뿐 아니라 천사들보다도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천사보다 휠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히브리서 1:4)

존 파이퍼(John Piper)는 예수가 천사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천국에 있는 어떤 천사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생을 받은 것과 같은 영광과 애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천사들도 위대하고 멋진 존재이지만 아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며,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가 아니고, 심지어 가장 높은 천사장도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히브리서 1:6).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경배는 물론이고, 천국의 모든 경배를 받을 분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다음으로 예수의 신성함을 밝힙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는 영원히 통치하시고…”(히브리서 1:8)

히브리서 뒷부분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함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그의 영원한 신성함을 분명히 밝히는 내용입니다(히브리서 13:8)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으므로 오늘과 어제의 모습이 다릅니다. 히브리서의 이러한 내용은 예수가 구약에 언급된 하나님이며, 자신의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도 어렵습니다.

제자들은 로마인들의 십자가를 만든 바로 그 나무를 창조한 사람뿐 아니라 거기에 못을 박은 사람들까지 창조한 분이 그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만유의 으뜸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가이사)의 영광을 빼앗았으며, 하나님(야훼)의 영광을 훔쳤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너무 예수에 치중한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바울이 예수에 대해 골로새인들에게 한 말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로새서 1:19)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를 온 세상의 뛰어난 존재로 두기 원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으뜸임을 피조물에게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합니다(신명기 6:4, 5; 시편 83:18; 잠언 16:4; 이사야 42:11). 이사야도 하나님(야훼)의 으뜸성을 분명히 밝힙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이사야 45:22, 23)

하지만 어떻게 예수와 야훼 모두 으뜸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인(Elohim) 창세기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하나님 혼자서 만물을 창조했다고 밝히면서 쓴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야훼) 역시 복수형입니다.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박사는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성경의 측면으로 볼 때 하나님의 기본적인 성격이 성경 내에서 복수형으로 묘사되었다는 증거는 충분한 이상으로 존재합니다.”[16]

바울은 예수에 대해 이사야갸 야훼에 대해 사용한 것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6:-11)

이 구절의 의미는 예수가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예수보다 700년도 더 이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자신이 유일한 신이자, 군주이고 구원자임을 밝혔습니다.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서 43:10,11).

또한 구약에서는 야훼 혼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자신이 “군주이자 이스라엘의 왕”이며 “구세주”이고 “최초이자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그를 “고대의 날들”이라고 부릅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에 대해, “왕이시자 세상을 심판할 군주 중의 군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요한이 예수를 “구원자”,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자 마지막”, “왕중의 왕”이자 군주 중의 군주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영생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바로 예수 단 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우주에서도 만유의 군주입니다.

패커는 예수가 완전한 신이어야 기독교가 말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가 단순히 뛰어나고 신적인 존재였다면 예수의 삶과 업적에 대한 신약의 내용을 믿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창조를 통한 행동이 예수가 세상에 오는 것과 세상 속에서의 예수의 삶,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 아주 당연하게 됩니다. 생명을 만든 그가 죽은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며, 성육신은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지만 신약에 담긴 다른 모든 내용에 대해서는 의미가 통하게 됩니다.”

결론

예수가 야훼라면, 기독교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자신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비웃으며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은 우리의 죄악에 대한 가장 큰 희생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정의는 우리의 죄악과 옳지 못함에 대한 댓가로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천사나 피조물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 뿐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주신 큰 은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왜 예수일까요?“ 참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제자들이 가르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설교한 바입니다.

에베소인에게 남긴 마지막 말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사도행전 20:28). 바울은 하나님(야훼)께서 이렇게 말했다는 스가랴의 예언을 되풀이한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스가랴 12:8, 10).

스가랴는 십자가에서 찔린 이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놀라운 조화를 이루어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 중심이 되는 주제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다른 모든 주요한 기독교의 교리는 퍼즐 조각처럼 맞게 됩니다.” 크리프트(Kreeft)와 타셀리(Tacelli)는 이렇게 설명합니다.[18]

  • 그리스도가 신성하다면 성육신 또는 육체로 태어난 것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는 역사를 연결해 주며 모든 것을 바꾸는 일입니다.”
  •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십자가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죄악으로 인해 닫힌 천국의 문은 우리에게 에덴 이후 처음으로 열린 것입니다. 역사상 어떤 사건도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그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그가 전지전능하고 지금 바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생명을 지금 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이러한 능력은 누구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가 신성하다면 그는 우리 삶 전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여기에는 우리의 영적 생명과 생각도 포함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주인으로 모셨으며 그를 창조주라고 기록했고 만유의 으뜸가는 자로 경배했습니다. 이 최초의 증인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왔고, 우리의 영원한 심판자이자, 왕 중의 왕이며 군주 중의 군주로 돌아올 것라는 점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디도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울은 예수가 누구인지와 우리 생명에 대해 가지신 하나님의 목적을 밝힙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디도서 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