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기어오른 흔적이 있는 바위
고흥 영남면 남쪽 끝 우암마을에 용추 라는 곳이 있다.
그 무렵에 고흥 사는 류시인(柳時仁)이란 사람이
용추골 간천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다.
그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역관인 류청신(柳淸臣)의 후손이었다.
그는 원나라 황제로부터 청신(淸臣)이라는 이름을 받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지금의 고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또한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호도(胡桃) 나무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도중에 천안 광덕사 경내에 심고,
씨앗은 고흥에 있는 고향 집 뜰 앞에 심었다.
이것이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심어지게 된 시초이며
천안의 수많은 호두나무의 기원이 되었다
류청신의 후손인 류시인은 어릴 때부터 천성이 강직하고 지략이 비범 하였으며,
특히 무예가 뛰어나 활쏘기 재주는 가히 신통할 정도라고 하였다.
그날도 무예 수련에 여념이 없던 류시인은 피곤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조만간 용추에서 용 두 마리가 싸울 텐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활로 쏘아 죽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하였다.
그래서 그날부터 활을 매고 용추 부근에 있는 절벽 바위틈에 은신하였다.
며칠을 기다리던 어느 날 별안간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용추가 울면서 거센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이윽고 용추의 깊은 물이 일시에 뒤집히면서
커다란 용 두 마리가 서로 물고 뜯고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솟아올랐다.
처음으로 용을 본 류시인은 순간 겁에 질렸다.
잠시 겁에 질려 있던 류시인이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두 마리 용의 혈전이 그칠 줄 몰랐다.
누가 맞았는지 알 수도 없는데,
용 두 마리가 동시에 용추 물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용추가 온통 피바다로 변하더니
용 한 마리가 굉음을 지르며 하늘로 솟구쳤다.
용암마을 남쪽에 있는 용바위를 딛고 하늘 높이 솟구치는 용의 입에서 뭔가 번쩍였다.
여의주였다
잠시 후 용 한 마리가 또 솟구치더니 이내 힘을 잃고 떨어졌다.
화살에 맞은 것이 분명했다.
성난 용은 여의주를 얻지 못한 분노로 용추골 해변 일대 바위를 큰 꼬리로 쳤다.
그러자 커다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용도 떨어지고 바위 조각도 떨어지더니 일시에 돌 제방으로 변하였다.
@용이 꼬리를 쳐서 만들어졌다는 돌 제방.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 용이 딛고 올라섰다는 용바위에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용이 바위를 기어오른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다. 한편 승천하지 못한 용이 이무기가 되어 떨어져 죽어서 만들어졌다는 제방을 보면 그 형태나 규모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쌓아 올릴 수가 없는것이다.
용바위에 있는 용오름 흔적.
용바위 용오름 흔적이 바닷가에까지 이어져 있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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