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목베기 미륵, 유래는?

w.j.lee 2017. 7. 26. 19:11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목베기 미륵, 유래는?


순천 주암면 행정저수지. 멀리 보이는 사포마을에는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끔찍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순천 주암면 행정리에는 사포(沙浦) 마을 들판은

아버지를 죽인 살부(殺父)의 형국이라 하여 살부정, 또는 살부쟁이라 부른다.

그런데 사포마을에는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목베기 미륵이 있다.

목 베기 미륵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부분 밑까지 톱으로 자른 듯 비스듬히 잘라져,

아랫부분만 원래 위치에 있고 상체는 약 10m 떨어진 당산나무 아래 넘어져 있다.

2등분된 사선의 단면에 장방형의 구명이 두 개 나 있다는데,

이는 2등분된 상체와 하체를 서로 끼워 세우기 위함이다.


옛날 이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짚신을 파는 노인이 살았다.

그런데 노인에게는 늘그막에 낳은 쉰둥이가 하나 있었다.

어찌나 애지중지하였던지 단 한시도 아들이 보이지 않으면 안달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일을 할 때에도 항시 아들더러 곁에서 놀게 하였다.

아들이 열 살 되던 해, 노인은 아들을 서둘러 장가를 보냈다.

그래서 아들은 인근 창촌마을 사는 열네 살 된 처녀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네 살 차이라고는 하지만 신랑은 꼬마나 마찬가지였고 아내는 이미 성숙한 티가 났다.

그래도 아내는 철부지 신랑을 하늘처럼 떠받들었고

어머니 없이 지내는 신랑에게 때로는 어머니 역할을 하곤 하였다.

장가를 갔는데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들을 노인은 항시 끼고 살았다.

그래서 아내는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오죽하면 그럴까 생각하여 묵묵히 살림에만 열중하였다

그날도 역시 노인이 평소처럼 짚신을 삼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용하던 칼을 가지고 곁에서 놀던 아들이

정자나무 옆에 있는 돌무더기 위에서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자칫하다가는 아들이 다칠 것 같았다.

그래서 노인이 아들을 떠받친다는 것이 그만 자신이 칼에 찔리고 말았다.

살짝 찔린 것 같았는데 노인은 이내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해 마을에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가뭄이 심하게 들면 사또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승평(순천의 옛 이름) 부사는 가뭄의 원인을 짚신 파는 노인의 아들에게 묻기로 하였다.

실수였는데도 아버지를 죽인 죄를 물어 아들을 처형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다들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였다.

가장 놀란 것은 아내였다.

처음에는 사또에게 애원을 하다가 나중에는 눈물조차 말라버렸는지

아내는 말없이 남편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말았다.

승평 부사는 아들을 처형한 뒤, 다시는 이러한 끔찍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후일에 본을 보인다며 동자의 미륵을 깎아 세웠다.

그러자 어찌 된 일인지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졸지에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며느리는 친정인 창촌마을에 가 지냈다.

그리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포마을이 보이는 산꼭대기에 올라 미륵을 향해 기원을 하였다.

시아버지와 서방님의 극락왕생을 빌었던 것이다.

당시 창촌마을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이 낮에도 바깥출입을 마음대로 못하였다.

더구나 깊은 산에 혼자 올라간다는 것은 남자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에 올랐다.

그녀의 정성에 감동하였는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도 피해간다는 소문이 퍼졌다.


한편 사포마을에는 아들이 죽은 후부터수십 년 동안 흉흉한 일이 잦았다

어느 날 마을 앞을 지나가던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액운을 막기 위해서는 동자의 미륵을 사선으로 가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시킨 대로 미륵의 상반신을 사선으로 갈라 따로 하나씩 세워두었다.

이로 인하여 붙은 이름이 '목 베기 미륵'이다.


사포마을과 행정저수지 중간 쯤 아래 논가의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목베기 미륵.(상반신)


목베기 미륵 하반신.


목 베기가 시행되던 날, 그날도 산에 올라 미륵을 향하던 그녀는 목 베기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나이가 들어 이미 할머니가 된 그녀는 충격을 받아 그

날로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더니 며칠 안 되어 죽고 말았다.

그래서 창촌마을 사람들은 호환(虎患)이 두려워 미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니 사포마을 미륵과 창촌마을 미륵은 내외지간인 셈이다.

창촌마을에 있는 할머니 미륵.


목 베기 미륵은 미륵의 상반신을 눕혀놓으면 비가 오지 않고

합체를 하여 세워놓으면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세워놓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분리하여 상반신을 눕혀놓는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며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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