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우산보의 아이 울음소리

w.j.lee 2016. 2. 14. 16:31


우산보의 아이 울음소리


순천 상사면 흘산마을은 이사천을 끼고 있어서 물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농사짓는데도 커다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가뭄이 들더니 몇 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다.

어쩌다 비가 와도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농사짓기에는 쓸모가 없었다.

평화롭던 마을 분위기도 이내 흉흉해졌다.

몰래 남의 식량을 훔쳐가는 일도 잦아졌고 이로 인하여 다툼도 많아졌다.

그 마을에 우산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네 살 밖에 안 된 우산이는 걸음걸이도 신통치 않은데

종종 보이질 않아 가족들이 애를 태웠다.

그런 우산이가 불쌍했는지 가족 모두가 우산이를 끔찍이도 아꼈다.

히 열 살 난 큰 오빠 상석이는 여동생 우산이를 업고 다닐 정도로 가장 정이 많았다.

그날도 우산이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마을 입구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석이가 보니 이사천에서 동네 어른들이 모여 보를 쌓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여 힘들게 돌로 보를 쌓았는데

쌓을 때마다 보가 자꾸 허물어지곤 하였다.

지난해에도 서너 차례 보를 쌓았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한 번은 겨우 완성되었는가 싶었는데 큰 물이 오자 한꺼번에 흔적도 없이 쓸고 가 버렸다.

올해도 벌써 세 번째다.

아예 농사일은 뒷전이고 보 쌓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보가 또 무너져 내렸다.

보가 무너지면 그날 마을 어른들은 죄다 술에 취해 탄식을 늘어놓곤 하였다.

술만 취하면 어른들의 눈빛이 무서워 보였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상석이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스님이 두 남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장탄식을 하였다.

"쯧쯧쯧, 장차 이를 어찌할꼬.

마을 사람들을 살리자니 어린것이 불쌍해서 어찌할꼬."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 상석이가 본능적으로 우산이를 끌어안았다

축 늘어진 어깨로 마을 어른들이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불안에 떨고 있는 남매를 보더니 달려왔다.

상석이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 가운데 몇 명이 스님이 사라진 쪽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그날은 유독 분위기가 흉흉하였다.

스님이 뭐라 하더냐 해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술판은 이내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한참을 치고받고 하더니 그 가운데 한 명이 버럭 화를 내며 뭐라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별안간 우산이 아버지가 몸을 날려 그의 멱살을 잡더니 다짜고짜 휘갈겼다.

그 후 며칠 동안 마을 사람들은 다들 말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우산이 아버지는 더 그래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산이 아버지가 아내를 불렀다.

말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가뭄이 들었는지 우산이 아버지 눈물샘이 말라버렸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퀭한 눈으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우산이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에밀레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아이를 희생시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마을 사람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산이를 물속에 넣고 보를 쌓아야 보가 완성되고,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 했다는 스님의 이야기가 계속 귓전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상석이도 이내 눈치를 채게 되었다.

그날부터 상석이는 우산이를 꼭 껴안고 놓아주질 않았다.

잘 때도 곁에서 잤다. 아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그날 상석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던 상석이는 환한 햇빛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깜짝 놀라 곁을 보니 우산이가 없었다.

목이 터져라 우산이를 불러대며 마을 어귀로 뛰쳐나가던 상석이가

마치 장승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였다.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마을 어른들의 축 쳐진 어깨에서

이미 상석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마을 앞 이사천으로 뛰어간 상석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쌓인 보였다.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우산이를 불러대는 상석이를 그의 부모가 가로막았다.

상석이의 글썽이는 눈에 보이는 엄마 아빠의 눈은 이사천처럼 깊어 보였다.

보가 완성된 후에는 마을에 풍년이 계속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보를 우산보라 불렀다. 죽은 우산이를 기리는 마음에서였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려 하였다는 손순(孫順)의 효행이 담긴 삼국유사.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처럼 자식을 희생양으로 바치려는 마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가뭄이 들 때면 우산보 근처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우산이를 봤다는 사람도 나왔다.

그럴 때마다 우산이 부모는 물론 상석이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우산이 넋을 기리는 제를 지내기로 하였다.

제를 지낸 날 밤 상석이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에 자라가 나타나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우산이로 변신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우산이는 상석이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오빠, 사실 저는 이사천 용왕의 딸이에요.

이사천 물이 계속 말라 용궁이 위기에 처하자 막내인 저를 흘산마을에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저를 돌아오게 하려고 우산이를 희생시켜 보를 완성케 한 거랍니다.

그러니 오빠, 너무 슬퍼마세요.

언제나 오빠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게요."

그 후로 우산보 근처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없었고,

마을에는 풍년이 계속되었다.


용왕의 딸이었다는 우산이의 전설이 깃든 우산보.

현재의 보는 1962년 수해로 무너진 후 다시 쌓은 것이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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