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는 사랑
찬 송 : 218장 -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성 경 : 요한1서 4장 16~21절
두려움이 생길 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방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자비하신 하나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셨으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길 때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두려움이 기쁨과 감사의 삶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주현 목사 ㅣ 매원교회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 절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 절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1서는 '사랑의 서신'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책입니다.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요한 기자는 그 사랑으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사랑 안에 거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증거라는 사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증거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두려움(포보스)의 의미는 노예가 상전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하는 감정이 지닌 파괴적인 위력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진전을 가로막고 인격의 성숙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다는 것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는 것임"(17)을 요한 기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죄값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근본적인 두여움에서 자유로워지고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태도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태도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11)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으로 관점이 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헌신과 섬김이 시작됩니다. 그런 삶 속에는 두려움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요한 기자는 그 사랑으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사랑 안에 거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증거라는 사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증거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두려움(포보스)의 의미는 노예가 상전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하는 감정이 지닌 파괴적인 위력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진전을 가로막고 인격의 성숙을 가로막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다는 것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는 것임"(17)을 요한 기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죄값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근본적인 두여움에서 자유로워지고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태도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태도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11)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삶으로 관점이 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헌신과 섬김이 시작됩니다. 그런 삶 속에는 두려움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생길 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의 방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자비하신 하나님,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하셨으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길 때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두려움이 기쁨과 감사의 삶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주현 목사 ㅣ 매원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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