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하나님이 주신 동산

w.j.lee 2017. 8. 15. 08:18
2017.08.15. 화요일
하나님이 주신 동산


찬  송: 580장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성  경: 마태복음 9:35~38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2)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요  절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한서(翰西) 남궁억은 1863년 12월 27일에 왜송골, 지금의 서울 정동에서 부유한 양반 가문의 12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독립협회의 살림을 이끌며 최초의 민간 신문인 <황성신보>를 창간했고, 윤치호의 권유로 세례를 받은 뒤 평신도 사역자로서 헌신하면서 청년 운동 단체인 상동 청년 야학원의 원장을 맡아 민족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8년간 배화학당으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던 중 나라 잃은 슬픔을 견디다 못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56세가 되던 1918년에는 강원도 홍천으로 내려가 자신의 사재 3,900환을 헌금하여 열 칸의 기와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무궁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하고,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지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일흔 살에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다가 풀려 났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39년 4월 4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궁억은 1922년 어느 가을날, 마태복음 9장 37~38절의 말씀을 묵상한 후에 무릎을 끓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이 환갑이 넘은 기물(棄物)이오나 이 민족을 위해 바치오니 받으시고, 젊어서 가졌던 애국심을 아무리 혹독한 일정 치하일지라도 변절하지 않고 육으로 영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그리고 붓을 들어 독립을 확신하며 찬송가 580장(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작사했습니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의 한반도가 "하나님이 주신 동산'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도우심으로 자유와 해방이 주어질 금수강산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실이 아니라 믿음을 찬송했습니다.

마침내 그 고백이 현실화 되어 1945년 8월 15일, 삼천리 금수강산에 자유와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미완입니다. 해방 7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느 여전히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 통일은 한국 교회의 서욕적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동산이 이 땅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성도들은 애국 애족의 마음을 가지고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쫓기는 자의 삶이 아니라 부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동산에서 일할 일꾼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동산임을 믿습니다. 여전히 분단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조국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기도하게 하옵소서. 욕망을 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성국 목사 ㅣ 평촌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