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4. 월요일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찬 송:
546장 -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성 경:
예레미야애가 4:1~4
(애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애 4: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애 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요 절 :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애 4:2)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애 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요 절 :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주전(BC) 586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선민'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끌려가는 치욕을 당합니다.
이를 온 몸으로 경험한 예레미야는 그가 지어 부른 네번째 슬픈 노래에서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이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2)라며 탄식을 합니다.
그의 한탄은 예전의 아름다웠던 모습과 현재의 비루한 처지를 비교한 슬픈 언어들로 이어지고(5~8),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비참함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것이라고(11,16)말합니다.
그리고 이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이유가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린 ...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 들의 죄악 때문"(13)이며,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기"(17) 때문이라고 경고합니다.
사는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더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아이고 어른이고 소망잃은 이들이 목숨을 끊는 일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힘든 것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해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의 손길을 바라며 신호를 보냅니다.
이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곳, 어려울 때 바라보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라면 누구를 찾고 어디를 바라보겠습니까? 혹시 구원하지 못할 무력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무엘 상은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12:21)고 하면서 여호와는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22)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의 어려움이나 자신의 능력 없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믿음에서 떨어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ㅗ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 12:20)
그렇습니다. 바라볼 곳을 바로 바라보지 않는 한 오늘도 슬픈 노래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에겐 소망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22)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어려운 환경과 무능력을 탓하며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하기가 무청 힘이듭니다. 우리 안의 설령님이시여 충만하셔서 믿음에서 떨ㅇ어지지 않게 깨우쳐 주시고, 신실하신 주님이 순간순간 붙들어 주고 계심을 알아차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식 목사 ㅣ 혜성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이를 온 몸으로 경험한 예레미야는 그가 지어 부른 네번째 슬픈 노래에서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이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2)라며 탄식을 합니다.
그의 한탄은 예전의 아름다웠던 모습과 현재의 비루한 처지를 비교한 슬픈 언어들로 이어지고(5~8),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비참함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것이라고(11,16)말합니다.
그리고 이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이유가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린 ...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 들의 죄악 때문"(13)이며,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기"(17) 때문이라고 경고합니다.
사는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은 더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아이고 어른이고 소망잃은 이들이 목숨을 끊는 일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힘든 것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해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의 손길을 바라며 신호를 보냅니다.
이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곳, 어려울 때 바라보는 곳이 어디입니까? 나라면 누구를 찾고 어디를 바라보겠습니까? 혹시 구원하지 못할 무력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무엘 상은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12:21)고 하면서 여호와는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22)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의 어려움이나 자신의 능력 없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믿음에서 떨어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ㅗ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 12:20)
그렇습니다. 바라볼 곳을 바로 바라보지 않는 한 오늘도 슬픈 노래는 계속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에겐 소망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22)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어려운 환경과 무능력을 탓하며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어렵고 힘든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하기가 무청 힘이듭니다. 우리 안의 설령님이시여 충만하셔서 믿음에서 떨ㅇ어지지 않게 깨우쳐 주시고, 신실하신 주님이 순간순간 붙들어 주고 계심을 알아차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광식 목사 ㅣ 혜성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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