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8. 토요일
새로운 기준
찬 송:
309장 - 목마른 내 영혼
성 경:
마태복음 5:38~42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요 절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요 절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3)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데, 우리나라 말로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혹은 반좌법(反坐法)이라고 합니다.
당시 무제한으로 복수를 용납하던 원시 사회의 규범 속에서 동일한 수준의 보복까지로 그 정도를 제한하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취지입니다. 개인간의 복수를 법률적 규범아래 두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여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곧 율법의 근간을 흔드는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에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말했지만, 너희는 그렇게 맛서지 말고 오른쪽 뺨을 치거든 윈편도 대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 하면 겉옷까지 주고, 억지로 5리까지 가자고 하면 10리를 동행하고, 무언가 달라는 사람에게는 다 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구는 신실한 성도라 할지라도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우리 눈에는 구약의 율법보다도 더 비 논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들립니다.
그렇대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의와 공평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화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것으로, 그분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는 그 말씀을 이루어 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내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얽매이게 만드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화해의 삶입니다.
이 길은 예수께서 이미 앞서 가신 길이기에, 제자인 우리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불합리해 보이며 논리적이지 않아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 끝이 무엇이 있는지 자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두지만 너희 생활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너희가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0,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사랑 자비 용서가 오늘 내 삶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 유혹과 시련이 많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 자비, 용서의 길을 쫓아가도록 힘을 주옵소서. 주님이 주신 새로운 기준으로 이웃과 형제자매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장혁 목사 ㅣ 드림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당시 무제한으로 복수를 용납하던 원시 사회의 규범 속에서 동일한 수준의 보복까지로 그 정도를 제한하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취지입니다. 개인간의 복수를 법률적 규범아래 두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출애굽기 말씀을 인용하여 '눈에는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곧 율법의 근간을 흔드는 말씀을 하십니다. 율법에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말했지만, 너희는 그렇게 맛서지 말고 오른쪽 뺨을 치거든 윈편도 대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 하면 겉옷까지 주고, 억지로 5리까지 가자고 하면 10리를 동행하고, 무언가 달라는 사람에게는 다 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구는 신실한 성도라 할지라도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우리 눈에는 구약의 율법보다도 더 비 논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들립니다.
그렇대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의와 공평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화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것으로, 그분의 사랑과 용서, 화해의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는 그 말씀을 이루어 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내 삶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얽매이게 만드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화해의 삶입니다.
이 길은 예수께서 이미 앞서 가신 길이기에, 제자인 우리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고 불합리해 보이며 논리적이지 않아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 끝이 무엇이 있는지 자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두지만 너희 생활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너희가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20,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사랑 자비 용서가 오늘 내 삶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 유혹과 시련이 많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 자비, 용서의 길을 쫓아가도록 힘을 주옵소서. 주님이 주신 새로운 기준으로 이웃과 형제자매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장혁 목사 ㅣ 드림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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