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살고 싶으면 사랑하라

w.j.lee 2017. 11. 29. 22:59
2017.11.30. 목요일
살고 싶으면 사랑하라


찬  송: 314장 - 애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성  경: 신명기 6:4~9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요  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암송할 정도로 소중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서 두개의 울림을 얻었으면 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요청하는 것일까요? 애정 결핍이 있으신 것일까요?

아마 그러실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랑에 목마르지 않다면 누가 사랑으로 목마르겠습니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 뒤로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네 날이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2)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24)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유일한 살 길이 하나님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가나안)에 이르도록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들의 여정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어찌 일방적일 수 있을까요?

사랑이 온전하려면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상호적이어야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야 했습니다. 생명의 길에서 정체하면 패망의 길만 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힘들 다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서를 바꿔 생각해보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의지(意志), 뜻입니다.

옛 선현들은 '너의 입지(立志)가 바로 세워 졌는가' 살피라 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 사랑인지, 아니면 은근슬쩍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뜻을 바로 세우려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마음을 오롯이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힘이 하나의 결로 흐르지 못하면 어느새 흩어지고 갈라져 다른 의도가 숨어듭니다. 그랬기에 신앙 선배들은 끊임없이 깨어서 하나님 사랑을 가장한 자기 이익(자기 사랑)의 도모가 없는지 살폈습니다.

마음도 뜻도 힘도 다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드러힞 않으면 자기 이익이 섞이고, 슬쩍 섞인 자기 사랑이 점차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맙니다.




마음도 뜻도 힘도 다하는 사랑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한 명령일까요?



하나님, 우리의 오늘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기억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더욱 더 깨어서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당신을 떠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도무지 생명이 아님을 얼른 알아채고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대선 목사 ㅣ 영파교회



출처 : 2017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